엄마의 그늘
'긴병에 효자없다' '열자식 한 부모 봉양못한다' 옛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나의 사랑 나의 엄마 붉은색 월남치마를 입고 고불고불 짧은 파마머리를 하고 1970년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멋쟁이였던 나의 엄마는 방매댁이었다. 이른 새벽 동네에서 제일 먼저 윗샘에서 물을 떠나 장독대에 정안수 떠 놓고 자식잘되라고 두손모아 싹싹 빌던 정성, 아궁이에 매캐한 연기마시며 여섯자식 입에 들어갈 밥을 하느라 부엌에서 드리는 달그락 달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좀 더 자고 싶던 유년시절 엄마는 솜씨가 좋았다.
봄에는 돋아난 미나리를 베어다 살짝 뎇여서 홍어무침을 잘해주셨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늘 푸성귀만 먹던 우리들 입맛에는 오일장에서 사온 홍어는 마당 한 쪽 풀 속에 넣어두셨다가 미나리를 베어와 다듬고 살짝 데쳐서 물기를 꼭 짜고 삭혀둔 홍어는 겉에 있는 점액질을 칼로 살살 긁어 내고 내장과 분리한다. 홍어는 살결따라 어슷하게 썰어 빙초산두어방울 설탕 고추장, 고추가루 넣고 조물조물 밑간을 해 놓고 미나리도 먹기좋게 썰어 고추자으 고추가루, 막걸리식초, 설탕 넣고 무쳐 한꺼번에 섞어가며 갖은 양념 넣고 무치면 새콤달콤한 홍어무침이 된다. 밥상에 오른 홍어무침 한 접시면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행복이 가득한 저녁밥상이 된다.
여름 엄마의 밥상에는 채소가 많았다. 전구지는 엄마의 단골반찬이다. 뒷밭 한 켠에 전구지 밭이 있어서 밭일 끝나고 광주리에 베어서 왔다. 깨끗이 다듬어 씻어서 외간장, 깨소금 넣고 살짝 무치면 비벼먹어도 맛있고 학독에 고추,마늘, 멸치젓갈 넣고 갈아서 담그는 전구지김치맛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자꾸만 먹어도 먹어도 맛있는 감칠맛이 입안을 맴돌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는 맛이다. 바로 담근 전구지도 맛있지만 익어도 익어도 곰삭은 맛 또한 일품인 여름 전구지 김치맛은 바로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맛이다.
한 여름 농사지은 밀을 수확해서 말린 후 버스를 타고 20분거리의 능주장에 가면 국수를 뽑아주는 기계가 있었다. 밀을 납작하게 눌러 빻아서 국수가 될 때가지 엄마는 능주장을 보며 기다렸다가 국수가 다 되면 누런 종이로 둘둘 말린 국수를 가지고 오셨다. 뽑아온 국수는 여름철 식량이었다. 농사일로 땀 흘리고 난 후 점심은 가마솥에 국수를 삶고 찬물에 헹군 후 윗샘에서 길러운 차가운 물에 설탕 넣고 설탕국수를 해 먹으면 달달한 맛이 그만이었따. 특히 땀 많이 흘린 아버지는 국수 한 그릇을 뚝딱 드셨다.
여름 은 풀과의 전쟁이었다. 밭농사를 지었던 엄마는 시간이 날때마다 밭 고랑사이에서 호미를 들고 계셨다. 집에 와서 엄마가 없으면 뒷밭으로 쪼르르 가서 '엄마' 하고 부르면 콩밭 사이에 흰 수건 질끈 동여맨 엄마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입은 옷은 땀의 줄줄 흐를만큼 젖어 있어도 엄마의 고생은 자식을 위한 수고로움이었고 자식을 위한 행복이었다. 밭고랑 사이에 심어 놓은 오이는 주렁주렁 열려있어 밭일하고 지친 몸을 오이냉구과 오이무침으로 변신해 여름날 지친 몸을 식혀주었다.
먹을 거리가 풍성한 가을은 뿌려놓은 배추와 무가 조금 자라면 솎아내야했다. 빽빽히 자라면 자리다툼을 하느라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광주리로 하나가득 속은 배추와 열무는 엄마의 좋은 김치재료였다. 다음어 소금에 살짝 절여 놓고 김치에 들어갈 속 재료를 준비한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밭에서 따고 마늘을 까고 찬밥 한덩이, 멸치젓을 넣고 학독에 쓱쓱 갈아 놓은 다음 절여 놓은 배추와 무를 씻어 소쿠리에 담아 물을 빼고 다라이에 양념을 넣고 재료가 들어가면 엄마의 손맛으로 버물버물 엄마가 김치 만들면 다라이 주변에는 냄새 맡고 모여든 자식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간봐라' 엄마의 한 마디에 자식들의 손은 담근 김치에 자동으로 손이 간다. 아삭한 식감에 비릿한 젓갈의 냄새와 고소한 참깨가 어우러져 멈출수 없게 하는 맛이다.
겨울은 바쁜 농사철이 끝나고 아버지는 새끼를 꼬아 덕석을 만들고 엄마는 바느질하며 하루를 보낸다. 동지섣달 찬 바람이 휑하니 불어도 아궁이에 따뜻한 군불때서 방바닥 따뜻하게 해 놓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10원짜리 민화투를 친다. 식구들끼리지만 봐 주는 것은 없다. 이기려고 살짝 패를 바꾸는 묘기도 부려가며 가마솥에 삶은 고구마 옆에 놓고 한 입씩 먹어가며 알싸한 맛이 나는 엄마의 동치미로 사이다 대신 목을 축이고 옹기종기 머리 맞대고 서로 패를 잡으려는 따스한 겨울 방안의 풍경이다.
동짓날 겨울철 가장 기다려지는 풍성한 먹을거리다. 며칠 전 부터 엄마는 찹쌀을 꺼내 깨끗이 씻어 다라이에 담궈놓고 여러번 물로 헹구어 두었다. 농사지은 팥도 꺼내 돌을 고르고 물에 깨끗이 씻어 삶아두고 바구니에 건져서 물기를 뺀 찹쌀을 머리에 이고 동네 앞 방앗간에 가서 빻아온다. 미지근한 물에 소금은 넣고 휘휘 저어 익반죽을 해 놓으면 딸들이 둘러 앉아 동그란 새알심을 빚는다. ' 동그랗고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 낳는단다'우리들이 새알심을 빚는 동안에 엄마는 부엌에서 푹 삶은 팥을 소쿠리에 건져 문질러 팥물을 만든다. 한참 가라앉힌 팥의 물을 다시 솥에 넣고 한 참을 끓이다 부글부글 끓어 오르면 빚은 새알심을 넣고 하얀 계란처럼 동동 떠오를 때 굵은 소금으로 간을 하고 팥물에 가라앉은 앙금을 넣고 다시 한 번 불을 때고 한 소큼 식힌다.
완성된 팥죽은 대문앞에 한 그릇, 장독대에 한그릇, 변소에도 한그릇, 외양간에 한그릇, 부엌 부뚜막위에도 한 그릇 놓아두고 김치와 동치미 그리고 큰 대접에 온 식구 한 그릇씩 하얗게 동동 또오른 새알심과 빨간 팥물이 들어 있는 팥죽에 설탕을 각자 기호에 맞게 타서 먹으며 후르륵 후르륵 한 그릇 더 먹고 싶은 맛이다. 든든히 배룰 채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돌다보면 이집 저집 장독대에 놓아둔 팥죽에 살얼음이 끼어 있어서 서로 맛있다고 나눠먹던 따스한 겨울의 정이 그리운 맛이다.
이렇듯 솜씨좋고 일 잘하던 엄마가 고장이 났다. 고된 농사일로 쓰러짐을 반복하던 엄마는 한쪽다리를 절며 그래도 농사일을 놓지 못하셨고 자식들 객지에 나가 홀로 남은 시간속에서 점차 기억을 잃어갔다. 홀로 남겨진 부모를 모실만한 자녀는 없었다. 사는게 바빠 요양원에 모셔 놓고 자식들은 각자의 삶은 살아가는 동안 점차 삶의 희미한 기억 마저 놓아가던 엄마 그런 엄마의 삶은 내가 사십이 되던 해 하늘나라로 떠나며 영영 이별을 했다.
'엄마 이제 그만 하늘나라 아버지 곁으로 가세요' 요양원에 계실때 너무 힘든 엄마의 귀에 내가 했던 말이다. '긴 병에 효자없다고' 자식이 여섯이고 며느리도 있었지만 누구하나 엄마를 모실만한 자식은 없었다.그런 내가 엄마의 아팠던 시기의 나이가 되었고 잘하지 못했던 자식으로서의 삶이 참으로 후회가 된다. 조금만 더 건강히 계셨으면 좋으련만, 고생만하다 하늘나라 가신 솜씨좋고 정 많던 동네에서 제일 멋쟁이였던 우리 엄마 참으로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