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

남이 해준 밥

by 맑은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이월의 마지막 주말, 차가운 바람에 귀가 시리다.

오후 두 시 표준보육과정 개정교육이 예정되어 있어서 집안 청소기를 돌리고 남편 밥을 준비한 후 집을 나섰다. 농산물시장에 들러 아이들 깍두기 담글 무를 다섯 개 사고 대파한 단, 깐 마늘을 사서 어린이집 조리실로 왔다. 아이들이 없는 텅 빈 공간은 고요만이 감돈다. 무를 깨끗이 씻어 아이들 입 크기에 맞게 깍둑썰기를 한 후 소금물을 끓여 무를 절였다. 무를 절여놓고 버무릴 양념을 준비한다. 무 반 개, 마늘 한 줌, 식은 밥 조금 넣고 믹서에 갈고 액젓을 넣고 대파를 송송 썰어 기본양념을 준비한 후 절인 무를 채반에 밭쳐 양념을 넣고 설탕을 조금 넣고 깍두기를 담갔다. 아이들은 매운 것을 먹지 못하니 하얗게 담그고 김치통에 담았다.


수업 시간까지는 세 시간가량의 여유가 있다. 여유롭게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걸을 시간이 있다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남동체육관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인천대공원까지 남동둘레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찬바람이 옷긴에 스며든다. 그래도 햇살은 따스해 기분까지 좋아진다. 아파트 옆을 따라 개천이 흐르고 자전거 도로와 둘레길을 나란히 만들어 놓았다. 산책기 양 옆에는 오래된 벚나무가 아름드리 서 있어 봄에 꽃이 피면 더 좋을 것 같다. 얼음사이로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소리에 기분까지 좋아진다. 먹이를 구하러 나온 우아한 자태의 흰색, 자색 두루미 한 쌍이 유유히 물속을 걷고 있다. 살얼음이 얼어있는 개울가에 버들강아지가 하얗게 움을 트고 청둥오리도 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며 발을 동동 구른다.


맨발 걷기가 유행이라 개울가 따라 흙길이 만들어져 있고 추운 날씨에 흙길을 질퍽거린다. 건강을 위해 걷은 사람이 많다. '우울하면 걸으세요, 그래도 우울하면 또 걸으세요' 산책로에 쓰인 문구이다. 남동다목적체육관 앞에 개천을 마주 보고 앉아 조망할 수 있는 데크로 만든 넓은 공간이 있다. 의자가 놓여있어 잠시 햇볕을 즐기며 마음의 여유를 느껴본다. 인천대공원 후문까지 여유롭게 걸어서 호수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돌다 다시 돌아가는 길,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래, 점심은 먹어야지' 한식뷔페 육천 원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혼자서 밥을 먹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래도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전라도 말투의 친근한 노모가 곱게 화장을 하고 연신 인사를 한다. '어서 오시요, 접시 들고 한 바퀴 삥 돌고 맘껏 드리고 계산은 나갈때 계산 하씨요.' 다른 손님들에게도 ' 많이 묵으씨요' 라며 친근함을 과시한다. 대부분 나이가 드신 손님들이 많고 작업복을 입은 남자 손님들도 군데군데 있다. 익숙한 듯 접시를 들고 장부에 기입하고 자연스럽게 식사를 한다. 흰색 부페접시를 들고 놓여 있는 반찬을 바라보았다. 붉은 색 전기밥솥에 흰쌀밥, 잡곡밥이 따로 담겨있고 전기후라이팬에 조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그 옆의 팬에는 계란물을 씌운 동그랑땡이 익어가고 있다.


그 옆의 바트에는 전라도 식으로 담근 빨간 배추겉절이가 먹음직스럽고 초록색 봄동을 살짝 데쳐 된장에다 무친 봄도 무침도 맛깔스럽다. 다음 칸은 작은 꽃게를 잘라 버무린 게장무침, 꽈리고추에 멸치를 함께 볶음 멸치볶음, 작은 바트에는 감태무침이 조금 담겨있다. 알타리김치, 사과와 마요네즈를 버무린 사과샐러드, 대형전기밥솥을 열어보니 산모용 미역으로 끓인 미역국이 바글바글 끓여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작은 전기밥솥에는 밥알이 동동 뜬 팥죽이 들어있다. 바구니에 적상추, 청량고추가 담겨있고 그 옆에는 쌈장과 맬젓이 놓여있다.

접시에 잡곡밥 조금 겉절이 봄동무침 꽈리멸치복음, 불고기를 담고 다른 접시에 청상추와 맬젓을 담아 자리에 놓고 스텐그릇에 미역을 한 그릇 담았다. 자리에 앉아 청상추에 맬젓을 넣고 한 입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나의 최애는 미역국과 겉절이 그리고 청상추와 맬장이다. 엄마도 어릴 적 산골이라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오일장에서 사온 멸치를 굵은 소금에 절여 항아리에 넣고 곰삭으며 반찬이 없을 때 매운고추 썰어넣고 참기름 참깨 넣고 멸치를 도마에 다져 무쳐주었다. 흰 쌀밥에 쓱쓱 비며먹으며 알싸한 그 맛이 다른 반찬이 없어도 밥 한그릇 뚝딱 하던 그런 맛이었다.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추억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던 행운이 오늘 우연히 들린 한식부페예 있었다.


함께 테이블에 앉아서 먹던 어르신들도 입맛에 맞는지 연신 리필을 해 드신다. 누구나 취향껏 담아 먹어도 몇 번을 먹어도 가격은 육천원에 남이 해준 밥 한끼라니! 걷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어서 기분이 참 좋다. 천 원짜리 여섯 장을 주인에게 주면서 ' 잘 먹었습니다' 라고 인사를 건네자 ' 또 오씨요, 맛있게 먹었쏘?' 라며 친근한 말투를 건넨다. 근처 무인 까페에 들러 천 오백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오늘 한식부페 이야기를 잠시 노트에 기록하여 이렇게 해도 남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나도 음식을 만드는 걸 좋아하고 먹는 것을 좋아해 어떻게 만들었을지 알고 있기에 더 감사한 마음이 느껴진다. 팔순의 노모는 평생 그 자리에서 식당을 하다 집에 있어도 되지만 사람들 만나는 기쁨으로 음식을 만든다고 했다. 얼굴에서 행복함이 느껴진다. 다시 돌아서 교육받으러 남동체육관까지 찬바람과 햇살을 받으며 걷는 내내 참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때로는 가끔씩 혼자서 남이 해 주는 밥을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오후 시간은 교육으로 의자에 앉아 있어야겠지만 맛있게 먹어줄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든 육천원의 고마운 밥상이 계속 생각날 것 같다. 다음에 인천대공원에 오면 또 한번 들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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