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감정 (1)
나는 5살 때즈음 추석 때, 차례 지내는 일의 부당함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다. 어머니를 비롯해 여자들은 일을 하는데 남자들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 제사는 아버지 쪽 조상들에 대한 것이라 했다. 아직 어렸던 나에게 일을 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격한 분노를 표현하며 큰 집에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분노가 부당하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충분히 부당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의문은 이것이다. 왜 그렇게 화가 많이 났었을까? 심지어 내가 당장 겪고 있던 문제도 아닌데 말이다.
분노는 자신을 보호하는데 쓰이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건강한 감정이다. 하지만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이 경험하는 분노는 주어진 상황에서 표현되는 일반적인 분노를 넘어선다. 이는 자기를 보호하려는 것을 넘어서, 그간 억제해 온 공격성을 표출하는 종류의 감정이다. 어떤 공격성인가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성이다. 과대한 자기상에 비해 형편없는 나에 대한 격노가 표출되는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이 나의 환상만큼 위대한 사람이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자신을 책망하는 격노이다. 따라서 격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분노가 시간이 지나면 누그러드는 데에 반해,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격노는 대상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사그라들기 어렵다.
이러한 격노는 억눌린 자신의 상처를 경험할 때마다 표현된다. 상처를 없애거나 과거의 상처를 되돌리고 싶은 욕구가 격노로써 드러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위대한 인물이어야 하는 내가 제사상 차려야 하는 성별이라는 데에서 자기의 훼손을 재경험하고 분노를 느꼈던 것 같다. 즉 과도한 자기가 꺾이며 생겨난 생채기 위에 생겨난 딱지를 건드는 순간 격노가 생겨난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격노는 “~게 되는 게 정당한데 그러지 않으니 나는 피해자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의 날개를 맘껏 펼치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 화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 부당한 일들은 세상에 너무나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에만 몰두해서 바꿀 수 없는 일들에 격노하고 있노라면 나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 올바른 것, 정당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신념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에 너무 매몰되지 않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격노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격노를 억압하곤 하는데, 이러한 억압으로 인해 우울감이나 좌절감이 뒤따른다. 억압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 중에 남는다. 따라서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만성적으로 이러한 공격성을 억압하고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표출되지 못한 격노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도 하며, 이 경우 자해나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가장 온전하고 위대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자신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격노라는 감정을 건강하게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
홍이화. 하인즈코헛의 자기심리학 이야기 1.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