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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감사하기

오늘도 우리 동물병원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해가 쨍쨍 내리쬐는 무던 운 수요일 오후 피셀과 피티 란  굉장히 시끄럽고 싸나운 8살짜리 치와와 두 마리를 키우는 미스 파틀로 우 부인이 우버에서 곧 내릴 거라고 전화를 먼저 걸었다.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약속 시간에 온 적이 없다. 10분 늦는 건 기본이고 어쩔 땐 30분 늦게 와서 다음 예약 스케줄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때가 대부분이다. 오늘도 13분 늦게 도착했다. 거동이 불편한 파틀로 우 부인은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항상 우버나 콜택시를 불러서 병원 앞 교차로와 파킹장 등 병원 앞 모든 교통을 마비시키고 우버 기사에게 날씨가 너무 더 우닌까 자기 나올 때까지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데 있으라고 악을 쓰면서 택시 문을 " 꽝" 닫고 왼손에 피셀을 오른손엔 피티 목줄을 잡고 뒤뚱뒤뚱 아주 천천히 병원 안으로 들어온다. 사실문제는 이제부터다.      

14년 전에 병원을 오픈할 때 초기 자본이 바닥인 관계로 렌트가 동네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주차가 용이한 쇼핑센터를 찾다 보니 증권거래소 바로 옆칸에 동물병원을 차리게 된 것이 내 발목을 잡고 말았다.  한번 거래에 몇십억씩 왔다 갔다 하는 증권거래소 직원들은 극도로 예민한 상태로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조금만 소리에도 방해가 된다고 한다. 이 증권거래소 매니저 짐 도널리는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처럼 백발에 아주 키가 크고 중후한 목소리를 전형적인 증권맨이다. 나한테 대놓고 말은 안 해도 시끄러운 개들이 왔다 가면 병원 문 앞에서 어떤 개가 들어와 있는지 병원 창문을 통해 유심히 지켜본다. 나는 최대한 짐과 눈이 안 마주치게 문 앞 창문을 등지고 서서 손님들과 얘기를 한다. 레이저처럼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짐의 눈총에 내 뒷 통수가 타들어 가는 것 같을 때가 많다.  

' 내가 미쳤지 , 아무 생각 없이 , 왜 이런 데다 동물병원을 차렸지? 고양이들만 보면 어떨까 고양이들은 강아지들처럼 마구 짓지 않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 잠시나마 머릿속에 굉장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 캉캉캉캉 " " 컹컹 컹컹"  정신이 번쩍 든다.  

피셀과 피티가 아주 미친 듯이 병원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짖어댄다.  

파틀로 우 부인은 아주 느긋하게  

"굿 에프터눈 " 하면 나한테 둘 다 살이 좀 쪄서 걷는 게 이상하다면 잘 보라고 한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면 밀폐된 공간이라 옆 건물로 소리가 훨씬 안 들리게 된다.     

"파틀로 우 부인,  애들 데리고 어서 진료실로 들어가시죠 "      

" 아니 애들이 걷는 게 요즘 이상하다니까,  봐봐 빨리 보라고 의사 양반 "   

피셀과 피티가 나를 보더니 더 미친 듯이 짓는다. 나는 오줌을 싸버릴 것 같다. 내 명에 못 죽을 것 같다. 이런 내 맘을 알았는지 피티가 여기저기 오줌을 갈긴다. ( 모든 개들은 병원 안으로 들어오면 얌전한 개들도 오줌을 싼다. 긴장되나 보다. 그래서 배려심 있고 생각 있는 손님들은 미리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대소변을 처리하고 들어 온다. ) 물론 거동이 불편한 파틀로 우 부인은 예외다. 피셀은 괜찮은데 피티는 병원만 오면 무조건 오줌을 싼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까 전화 왔을 때 미리 두껍고 흡수가 잘되는 타월을 4장이나 준비해 두었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오자 애들이 약간 진정되었다. 피티가 으르렁 거리며 의자 밑으로 숨는다. 


" 피티 좀 테이블에 올려 주시겠어요? 제가 잡으면 겁먹어서 물것 같아요."      

" 아이고 의사 양반 이 쪼그만 애들이 물면 물어봤자지 , 뭘 얼마나 아프다고 그래 , 그리고 피티는 소리만 내지 절대 물지 않아. 밖에 내 콜택시 보이지 빨리빨리 진료 끝내 달라고 ,  택시요금 계속 나간다고. 그리고 발톱도 둘 다 깎아주고 지금. "     

'아 놔' 오늘은 꼭 말해야겠다. 한 1년 넘게 계속 참았는데 더 이상은 나도 못 참을 것 같다.  

' 아니  쉬운 애들도 아니고 이렇게 사납고 짖는 애들을 그것도 두 마리나 운전도 못하시고 걷는 것도 불편하셔서  대소변도 못 보게 해서 들어와 병원 안 사방 군데 오줌을 젖게 하고 싸 낳게 나를 물려고 하는데   계속 괜찮다고 하고, 내 생각엔  고집스럽게 남들한테 피해 줘가면서 키우는 억척스러움이 굉장히 이기적이고 무책임해 보였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이를 꽉 물고. 배꼽에 힘을 주고 오늘은 소신껏 말해야겠다. 


" 혹시 댁으로 직접 와주는 veterinary mobile service  같은 동물병원 왕진 서비스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여기까지 콜택시 잡아 오시기도 힘들고 피티랑 피셀도 스트레스 많이 받는 것 같고 저희도 빨리빨리 재촉해서 진료를 봐야 하니까 너무 힘들고 옆집 증권거래소에서도 너무 시끄럽다고 계속 항의가 들어와서요. "       

한 2분간 정적이 흐른다.    

" 의사 양반 왕진 서비스는 왕복 거리당으로 돈을 받아 그리고 진료비도 여기보다 훨씬 비싸고 하라는 데로 다해야 해, 내가 뭐  왕진 서비스 몰라서 여기까지 콜택시 타고 힘들게 오는 줄 알아 "      

" 아 저는 애들 데리고 왔다 갔다 하면 너무 힘드실 것 같아서요, 재정적으로 힘드신데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키우시는 게 저는 이해가 잘 안 돼서 말씀드렸습니다. "   

" 의사 양반.... 애네들, 원래부터 내가 키우던 애들이 아니야 , 삼 년 전에 암으로 죽은 내 딸이 대학 다니면서 키우던 애들인데 죽으면서 나한테 부탁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계속 키우는 거야. 나는 얘네들 키울 형편도 안 되고 내 몸 움직이기도 힘들어, 어쩌겠어 죽은 내 딸이 마지막으로 그렇게 부탁하고 갔는데.... "  

파틀로 우 부인 눈에 눈물이 맺기 시작했다. 내 눈가에도 눈물이 맺었다.  

나도 참 내가 인정머리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불평만 가득했던 나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 죄송해요 파틀로 우 부인 오고 싶을 때 오시고요. 오늘 제가 발톱 깎은 비용을 안 받을게요. 대신 다음에 오실 때 애들 밖에서 오줌을 해결하고 들어 오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진정제도 있어요  미리 먹여서 오시면 안 될까요? "   " 의사양반 꼭 그렇게 까지 해야 돼? "  " 뭐 싫으시면 어쩔 수 없고요 ----"

파틀로 우 부인 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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