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조이는 케서린 헤리스가 키우는 5살 된 말티스 여자애다. 6개월쯤 만성 설사를 하고 있었는데 첫 번째 병원에서 피검사와 엑스레이를 찍어도 이상이 없어서 , 두 번째 병원에서 초음파까지 했지만 원인을 못 찾아 두 달 전쯤 우리 병원에 와서, 내가 내린 처방은 과도한 간식을 끊고 처방식을 먹고 두 달 후 다시 재검진을 하기로 했다. 오전 9시 정각 환한 미소를 지으며 룸으로 들어오는 케서린은 날 보며 조이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른다며 너무 고맙다는 말을 계속 반복한다. 어떤 의사도 못 고친 만성 설사를 처방식 하나로 나을 수 있게 했다며 칭찬을 한다. 난 이미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거의 다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식이요법밖에 없었고, 만일 처방식이 안 들었다면 위내시경, MRI 나 장세포 조직 검사 같은 높은 비용과 마취가 병해 되는 검사를 더 했어야 했을 거라 말을 했지만 내 말은 듣는 것 같지도 않고 내가 다른 의사들이 못 찾은 걸 진단한 것처럼 계속 이야기를 몰아간다.
나도 칭찬 들으니 좋기도 하고 계속 내가 한건 없다고 말하는 게 무색할 것 같아. 그냥 씩 웃어 주었다. 나도 이 어색함을 어쩔 줄 몰라했지만 나름 어깨가 으슥해졌다. 사실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검사를 다 해 놔서 나는 얻어걸린 상황이다. 이럴 때 칭찬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주인도 기뻐하고 환자도 좋아졌다니 나도 괜찮은 의사인가 보다 싶다. 자기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한테도 입소문을 내주겠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렇게 뿌듯함을 느끼며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오기도 전.
오후 2시쯤 미스터 올브라이트가 로비에서 나와 개인적으로 당장 할 말이 있다며 병원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헤리엇은 미스터 올브라이트가 키우는 2살 된 아주 건강한 잉글리시 불도그 남자 강아지다. 한 달 전부터 일주일에 2번 이상은 구토를 하는데 피검사, 엑스레이, 초음파를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저번주부터 처방식을 두 달간 먹여 보기로 했다. 성격 급한 미스터 올브라이트는 처방식 시작한 지 5 일도 안 돼서 다른 병원에 가서 위내시경을 한 모양이다. 식도에 조그만 결절이 발생해 음식 먹을 때 한 번씩 토했나 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 몬트로스 병원 닥터 샌더스는 헤리엇을 보자마자 위내시경을 하자고 하던데 당신은 왜 몰랐어요? , 식도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해 봤냐고요? "
" 미스터 올브라이트, 일주일에 두 번 토한다고 전신 마취까지 해서 위내시경을 바로 하진 않습니다. 전에 가신 병원의 닥터 샌더스도 제가 피검사, 엑스레이, 초음파가 이상이 없는데 처방식을 먹어도 계속 토하니까 위내시경은 했을 겁니다. 저도 그랬을 거고요 "
" 의사양반 당신은 위내시경을 바루 안 하고 처방식을 시작했잖아, 더 기다렸다 우리 헤리엇 잘못되면 어쩔뻔했어, 그리고 피검사랑, 엑스레이, 초음파 할 때 왜 몰랐어 내가 돈을 얼마나 쓴 줄 알아요? "
" 복강초음파는 복부 쪽 장기를 집중해서 보는 거고 , 엑스레이로는 식도에 조금만 결절 같은 건 않나 옵니다. 피검사는 다 정상이었고요. 마취를 하고 위내시경을 하면 건강한 환자들도 마취약 때문에 몇 주 동안 헛구역질이 나고 위내시경 때문에 소화기관이 예민해질 수 있어서 처방식으로 먼저 치료해보려고 한 겁니다. 저도 처방식이 안 들으면 위내시경이나 MRI 같은 정밀 검사를 해보려고 했습니다. "
"닥터 샌더스는 피검사, 엑스레이, 초음파 하나도 안 하고 잘만 알더만 쯧쯧, 본인 실력 없단 소린 않고.
당신 병원에서 받은 피검사, 에스레이, 초음파 비용 다 돌려줘요 "
내가 계속 닥터 샌더스가 바로 진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그전에 많은 검사를 해놔서 힌트를 얻은 거라고 계속 말해봐야 구차한 변명같이 들릴 것 같고 어찌한 단말인가.
"어미 늑대는 이삼일간 사냥을 나갔다가 새끼들한테 돌아와 소화된 음식물을 토해서 새끼들을 먹입니다. 젊고 건강한 강아지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토하는 건 밥을 빨리 먹거나 음식이 안 맞아서 그러는 경우도 있어서 처방식을 먼저 해보자고 한 겁니다. 피검사도 다 좋았고요. 처방식을 먹이는 동안 계속 안 좋아졌으면 위내시경을 추천드렸을 겁니다. "
" 우리 헤리엇은 늑대가 아니에요, 얘는 잉글리시 불도그이라고요, 몇만 년 동안 인간하고 살면서 야생을 잃어버렸다고요. 애는 그렇게 자생력이 없어. 헤리엇이 그동안 고생했을걸 생각하면 이 케이스를 법적으로 처리하고 싶지만 그동안 정도 있고 하니 내가 그동안 지출한 비용만 받으면 당신을 용서해 주려고 해요. "
오늘은 처절히 얻어터지는구나. 오전에 왠지 운수가 좋아 얻어걸린 것 같더니.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생각 나는 날.
근데 비는 안 올 것 같고 밖은 햇볕이 쨍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