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과 진돗개 농장

Moral licensing 우리가 갇혀 있는 작은 방에 대하여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는 읽을 때마다 마음 한 곳이 서늘해진다.

1960년대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아내, 수전.
겉으론 완벽하다. 정원이 딸린 하얀 벽돌집, 네 명의 착하고 예쁜 아이들, 밖에서 보기엔 그저 ‘부러운 삶’.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완벽함 아래엔 늘 작은 금이 있고, 금은 결국 벼랑 끝까지 이어진다.


남편 매슈의 바람 이후, 수전은 조금씩 무너진다.
경제적 책임을 다하니까 어느 정도의 일탈은 괜찮다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당시의 공기.
“나는 그럴 자격이 있어.”
바로 그 모럴 라이센싱이라는 이름의 착각 속에서, 그녀는 말없이 침몰한다.


결국 수전은 ‘나만의 공간’을 찾아 떠난다. 도심 변두리의 허름한 19호실.
남이 보기엔 더럽고 낡았지만,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곳.
시간이 멈추고, 세상의 기대와 역할에서 전부 벗어나는, 어쩌면 그녀가 가진 마지막 자유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남편의 사립탐정에 의해 들켜버린 순간, 수전은 더 이상 숨을 곳을 잃는다.
작품의 첫 문장,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는 바로 그것을 말한다.
그녀를 지켜줄 줄 알았던 합리성과 이성은 결국 그녀를 절벽까지 데려다 놓았다.


80년대에 멈춘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13년째 진돗개를 분양하는 미스터 P.


80년대 초 국비 유학으로 미국에 왔고, 그의 시간은 아직도 그 시대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사실 나도 그렇다. 김밥 값, 짜장면 값, 탕수육이 ‘특별한 날의 음식’이었던 기억—all 그대로 내 안에 살고 있다.
이민자들의 시계는 종종 고향의 한 시점에서 멈춘다.


미스터 P는 진돗개의 혈통을 지키는 일이 ‘자기 인생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멋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시작된 건 그 사명이 세상의 변화보다 앞서기 시작하면 서다.


미국은 예약 중심 사회다.
동물병원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예약이 꽉 차 있고, 응급이 아니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한국식 80년대 감정으로 병원 문을 두드린다.
“혈통을 지키는 큰일을 하는 내가 이 정도는…” 그 말의 마지막은 굳이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진돗개는 한 주인을 평생 잊지 못하는 특성 덕분에 입양도, 환경 적응도 쉽지 않다.
풍토·알레르기·사교성—모든 것이 이곳에서는 새로운 도전이 된다.
그런데도 무분별한 교배와 관리 부실은 계속 반복된다.
혈통 보존이라는 ‘선한 가치’가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만든다.


어쩌면 이것도 또 하나의 ‘모럴 라이센싱’ 일지 모른다.
좋은 일을 한다는 믿음이, 현재의 책임을 가리고, 타인의 시간과 원칙을 가볍게 만든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19호실이 있다


수전에게 19호실은 도피처이자 마지막 남은 자기 자신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방도 빼앗긴 순간, 그녀는 삶의 이유를 잃어버렸다.


미스터 P에게는 그의 19호실이 ‘80년대 한국’ 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작은 방을 안에 품고 산다.
편안하지만, 갇혀 있고, 변화하지 않는.

그리고 그 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순간,

우리의 지성도, 관계도, 시대도 잠시 멈춰 버린다.


용서하면 안 되는 것들


이 소설이 요즘 다시 읽히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우리 시대의 모습이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전구 하나 못 갈아도 괜찮아. 공부만 잘하면 돼.”
“밖에서 돈만 잘 벌면 다 용서가 되지.”


이런 공기는 또 다른 매슈를 만들고, 또 다른 수전을 만든다.
도리스 레싱이 보여준 건 개인의 쓸쓸한 비극이 아니라
사회의 관용이 만들어 내는 구조적 폭력이다.


어떤 일들은, 어떤 착각들은, 우리가 더 이상 가볍게 용서해서는 안 된다.


그 관용은 결국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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