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 이야기

삶에 진정한 의미

개인 비서가 오늘만 세 번째 전화를 걸어왔다.
서류는 모두 준비되었는지, 누락된 건 없는지, 혹시라도 불편함이 생기진 않을지.
그의 목소리엔 조심스러움과 긴장이 묻어 있었고, 나는 그 진심이 조금 이상했다.
“작은 동네 병원에 오는 일에 이렇게까지 예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민자가 운영하는 작은 병원.
우리 병원을 찾는 이유라면 뻔하다. 비용이 조금 덜 들고, 예약이 자유롭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덜 몰려 조용하다는 점.
하지만 이 보호자는 모든 것이 달랐다.
두 주 전부터 예약을 잡고, 세 번 네 번씩 확인하며, 자신의 하루를 그 방문의 중심에 놓는 듯한 움직임.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걸까.”
그 물음표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환자 기록을 펼치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멈칫했다.
호두. Hodu.

그 이름엔 분명한 향기가 있었다.
한국에서 겨울마다 들던 된장국 냄새,
김치 익어가는 소리,
낯선 땅에 도착한 이민자가 가슴 깊숙이 품어두는 어떤 그리움.

호두는 7년 동안 번식장에서 새끼만 낳다가 버려진 개였다.
누군가의 손에 들어와 비행기를 타고 이 먼 나라까지 왔고,
이제야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려는 아이.
그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친숙한 냄새, 더 부드러운 마음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
보호자는 나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비서의 신중한 목소리도,
두 주 동안 이어진 준비 과정도,
1시간 반이나 되는 긴 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열정도.

그녀는 부유한 사람이라고 했다.
개인 전용기를 가진, 큰 건설회사의 회장.
하지만 그 모든 타이틀을 내려놓고
호두 옆에 다소곳이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은
참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호두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낯선 땅에서 버벅거리는 작은 동물병원 수의사에게도
묘하게 위로 같은 기회를 건네주었다.

나는 오늘 그 사실을 생각하며
잠시 진료실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빛이 유난히 잔잔해 보였다.

아마도…
누군가가 누군가의 삶에 작은 이유가 되어준다는 건
이런 느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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