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명상이 좋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막상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아 40분을 버티다 보면, 고요해지기는커녕 온갖 기억과 감정이 몰아친다.
과거의 상처, 문득 떠오르는 웃음, 해야만 하는 일들, 걱정, 가족, 직장, 통장 잔고, 밀린 고지서… 그리고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오래된 기억들까지 수면 위로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기억들 속에는 아직도 내 몸 어딘가에 남아 있는 긴장과 아픔이 있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몸 깊은 곳의 근육이, 신경이, 세포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그 감정덩어리들은 마치 어둠 속에서 깨어난 고요한 파도처럼 온몸을 흔든다.
하지만 그때, 단 한순간—
그 불편함의 본질을 바라볼 용기를 낼 수 있다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무너질 것 같던 어둠이 서서히 모양을 잃고, 차갑던 감정이 부드러워지며, 나는 그 오랜 상처를 천천히 정리해 나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대로 눈을 떠버리면?
다시 처음부터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할’ 뿐이다.
프로이트는 그것을 트라우마라 불렀고, 아들러는 용기라 했다.
상처를 직시하고 다시 해석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옥죄는 쇠사슬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결핍은 단단함으로, 열등감은 이해로 바뀌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는 영혼에 관심이 많다.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내 영혼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연 누구를 도울 수 있을까—이 질문은 여전히 내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린다.
그러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10년 동안 병실 침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던 환자가,
“강아지가 왔습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
나는 그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동물은 말없이 인간의 마음을 깨운다.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영혼의 문을 여는 힘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말(馬)을 통한 치유는 그보다 더 깊다.
말의 호흡, 말의 걸음, 말의 체온을 느끼다 보면, 마음속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상처가 조용히 풀리기 시작한다.
말의 등을 타고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 잠겨 있던 마음의 문이 아주 작은 소리로 ‘찰칵’ 열리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말하고 싶다.
혹시 삶이 너무 지치고 힘겹다면, 고양이나 강아지를 한 번 키워보길 바란다.
정말 놀라울 만큼 달라진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가 없듯, 완벽한 반려인도 없다.
그저 서로를 알아가며,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며, 같은 시간을 최대한 따뜻하게 살아낼 뿐이다.
상처는 혼자 품으면 흉터가 되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면 이야기로 변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다시 우리를 일으킨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작은 존재들과
서로를 살려내는 조용한 기적의 연속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