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본 인간의 심리와 철학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보호자일수록 더 큰 결정을 내리는 이유

어떤 응급병원 수의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강아지도, 주인 돈 떨어지면 죽습니다.”
잔인한 문장이었지만, 나는 그 말의 무게를 25년 동안 매일 실감해 왔다.

진료실은 인간 감정의 실험실이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감정들이 동물이 아픈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사랑, 불안, 죄책감, 책임감, 혼란, 그리고 조용한 절망까지.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당신은 보호자들의 감정과 선택을 그렇게 깊게 들여다보나요?”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사이지만, 내 손님들의 웰빙도 내 환자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동물이 회복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회복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진료실에서 한 가지 반복되는 장면을 보아왔다.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보호자일수록, 오히려 더 큰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은 사람을 쉽게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여유가 없으면 더 아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론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료실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장면이 펼쳐진다.

기초 검사에도 주저하던 보호자가
갑자기 “다 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신용카드 한도가 초과되는데도 손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나는 자주 본다.
그건 그들이 비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감정이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모건 하우저는 『돈의 심리학』에서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사람일수록 비합리적 선택을 하게 되는 심리적 이유를 설명한다.
여유의 부족은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압박 상태이기 때문이다.
희망이 부족하면 사람은 현실적 확률이 아니라
지금의 감정을 잠시라도 벗어나게 해주는 “탈출구”를 선택한다.

진료실에서도 똑같다.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보호자일수록
‘좋은 보호자여야 한다’는 부담,
‘놓치면 안 된다’는 공포,
‘내가 이 아이를 아프게 한 건 아닐까’라는 죄책감이
결정을 흔든다.

그들의 선택은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 믿음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나는 이제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안다.
사랑이 크면 죄책감도 크고,
불안이 클수록 결정은 흔들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의 산물로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진료실에서 인간을 다시 배운다.
돈이 감정을 흔들고,
감정은 이성을 흔들며,
그 흔들림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허락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나는 보호자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수의사도 인간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고통과 불안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당신이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
그게 우리 일입니다.”


어쩌면 나는 동물을 치료하는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나에게 매일 인간을 다시 이해하게 한다.

사랑은 언제나 진심이고,
현실은 언제나 어렵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심봉사가 본 첫 장면을 그린 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