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처럼 허탈한 날이 있다. 오늘 벨이 나에게 그랬다

14년 전의 실패가 다시 문을 두드릴 때.

벨은 지금 열여섯 살이다.
두 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대퇴골이 산산조각 난 채 안겨 들어왔던 작은 개.
몸무게는 고작 3파운드. 너무 가벼워서 손 위에 올려놓으면
숨 쉬는 흔들림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날 난 큰 병원 정형외과 전문의에게 보내라고 했다.

뼈가 너무 얇고 약해 일반 병원에서 할 수준이 아니라고.
하지만 보호자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선생님, 제발… 돈이 없어요.
큰 병원은 못 가요. 어떻게든… 살려주세요.”

젊은 시절의 나는 이상하리만큼 고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고집만큼이나 마음이 약했다.

“해봅시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나는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 작은 개의 몸에도 맞을 만한 본 플레이트를 겨우 구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수술을 했다. 내 기술의 한계, 장비의 한계, 뼈의 약함.
모든 것이 벽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살려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들어갔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냉정했다. 뼈는 붙지 않았고 다리는 계속 너덜거렸다.
나는 죄책감에 두 번이나 재수술을 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얼마 후 보호자는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더니
이렇게 말했다.

“수술을 잘못하신 거라면…
절단 수술비를 책임져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은
마치 잘 달리고 있던 자동차가
갑자기 엔진이 멈춘 것처럼
나를 멈춰 세웠다.

나는 결국 몇천 달러를 내고
절단 수술비를 대신 지불했다.
안타까움과 씁쓸함, 억울함과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그러나 벨은 다리 하나로 놀랍도록 잘 살아주었다.
그 후 14년.
보호자의 품에서,
낡은 세월 위를 꿋꿋하게 걸어왔다.

오늘 벨이 다시 내 진료실 문을 들어섰다.
보호자는 말했다.

“백내장 수술을 시키고 싶어요.”

나는 최대 5천 불 이상 든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돈은…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참 많은 감정이 몰려왔다.

다리를 살릴 돈은 준비하지 못했던 사람.
그때는 모든 것을 나에게 떠넘겼던 사람.
그 사람이 오늘은 눈을 위해선 어떻게든 돈을 만들겠다고 말한다.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14년 전의 그 밤이 떠올라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말하지 못한 피로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일까.

수의사도 인간이다.
때로는 억울하고, 허탈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내가 애써 지켜주려 했던 다리보다
보호자의 선택이 항상 더 옳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벨의 삶을 바라본다.
다리가 하나 없어도 14년을 버틴 작은 생명을.

그 생명이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선생님, 그래도 우리가 여기까지 왔잖아요.”

아마 오늘 내가 느낀 허탈함은
그 생명 앞에서 인간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와 피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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