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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Aug 11. 2021

◇1. 서른을 바라보며 가족과 함께 산다는 건

스물아홉 살. 독립을 해야 하나?

스물아홉 살.

난 부모님과 두 살 터울의 오빠와 같이 산다. 매일 왕복 세 시간 거리의 회사를 출퇴근 하지만, 난 독립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일주일 전까지는. 


부모님이 독립을 하라고 했을 때도 듣는 둥 마는 둥 하였다. 독립을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면 너무 외

로울 것 같았고, 혼자서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보였고, 돈이 줄줄 샐 것 같았다. 주변 친구와 회사 동료들은 입을 모아 처음에는 다 그렇지만 독립하면 신세계를 보게 된다며 적극 권장하였다. 하지만, 난 집을 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푼 한 푼 모아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된 건 불과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평소에 부모님은 자주 다투시긴 하지만 그래도 남들이 보기에는 잉꼬부부였다. 엄마는 아빠의 험담을 나한테 늘어놓지만, 엄마 친구들은 아빠만 한 사람이 없다고 부럽다고 했다. 난 이런 부모님이 좋았다. 하지만 최근 사이에 이런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아빠는 지금까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바쁘셨다. 퇴직 후 지금도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본 아빠의 모습이랑은 많이 달랐다. 요즘은 여유도 있어 보이고, 일도 많이 바빠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오빠랑 나를 뒷바라지하느라 바쁘셨다. 오빠랑 나랑 대학까지 보내고, 취업을 할 때까지 묵묵히 지원을 해주셨다. 그들은 항상 바쁘게 살았다. 그런데 오빠와 내가 각자 알아서 살 수 있을 만큼 크고, 그들의 사회적인 지위는 낮아졌다. 이제 바쁘지 않게 되었다. 바쁘지 않다 보니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바쁠 때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눈에 밟히게 되고, 부모님 모두가 이제는 본인도 편하게 살 때가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아빠는 집에 와서 소파에만 붙어 있는다. 물을 마시거나, 과자를 먹고 싶을 때도 오빠나 나를 시킨다. 우리는 이제 다 큰 성인이고 각자의 일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난 세대이기 때문에, 지속되는 심부름에 이의를 제기한다.

"아빠도 좀 일어나서, 아빠가 좀 해!"

아빠는 가끔씩 우리 눈치를 보며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기도 하지만, 열에 한 번 꼴이다. 난 이런 아빠의 모습이 점점 보기 싫어진다. 


엄마는 요즘 유튜브 동영상에 빠졌다. 엄마의 일상은 이러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차린다. 집안 청소를 좀 하다가,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그러다가 재택근무를 하는 오빠의 점심을 차릴 준비를 한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털어서 점심을 먹고, 낮잠을 청한다. 잠을 청하지 못하자, 일어나서 냉장고에 있는 요리 재료를 꺼낸다. 저녁 준비를 하면서 점심 설거지를 한다. 아빠와 내가 퇴근을 하면 저녁을 차린다. 그리고 설거지는 우리를 시키고 방에 들어가서 티브이를 본다. 이런 생활은 평일과 주말이 동일하다. 난 이런 엄마의 모습이 점점 보기 싫어진다. 


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엄마의 밥 먹었냐는 질문에 "알아서 먹을게요"라고 대답한다. 난 집에 있는 걸 알아서 차려 먹을 수 있는 29살 성인이니까. 


어느 주말이었다. 아빠는 뭐에 삐쳤는지 하루 종일 말도 안 하고 있다. 말은 안 하지만, 엄마의 밥 먹으라는 소리에는 즉각 반응한다. 엄마는 또 밥을 차리고 치우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한다. 엄마의 일상인데 그날따라 보기 싫었다. 왜 엄마가 다하는 거지? 

"엄마 둬~ 내가 할게" 

"그래. 너도 좀 해라."

난 엄마 옆에서 빨래를 널었다. 아빠는 그 앞에서 티브이를 보고, 오빠는 방에서 게임을 했다. 빨래는 우리 둘이 널었다.


방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데, 건조기가 다 돌아간 알람이 울렸다. 난 정말 누워있고 싶었지만, 그래도 엄마가 혼자 할 것 같아서 일어났다. 빨래를 갰다. 


그러다가 혼자 배가 고파졌다. 점심을 안 먹어서 그런가? 있는 밥으로 혼자 차려먹었다. 밥을 먹고 졸린 눈을 비비며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 없으면 밥도 안 먹어?"

그리고 엄마가 밥을 차렸다. 오빠가 눈치를 보면서 방에서 나와 밥을 차렸다. 오빠는 배는 안 고프지만, 밥을 먹긴 할 거라고 하였다. 아빠는 삐쳐서 방에서 수저가 식탁에 놓일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너무 싫었다. 난 방에서 이 상황을 관망하기만 했지만, 엄마의 인생이 싫었다. 우리 모두 주말은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빈둥빈둥 대고 움직이기 싫었다. 하지만, 엄마도 회사일을 안 했을 뿐, 평일 내내 일을 하였다. 엄마도 쉬고 싶을 것이다. 


엄마가 밥을 다 먹고 날 불렀다.

" 서현아~ 이거 사려고 하는 데 어떠니?"

엄마가 그릇을 사고 싶어 했다. 엄마는 뭘 살 때 나의 의견을 자주 묻는다. 내가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에게 나는 친구이자 딸인 것 같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이야기를 빙자한 상담을 하기도 하고, 나랑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한다. 


엄마의 평소 일상을 보면 엄마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더 효도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엄마 옆에서 수다 떨고 같이 일상을 나누는 게 효도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왜 나만 하는 느낌일까? 엄마에게는 나 말고 오빠도 있는데, 항상 나만 자식 플러스 친구 노릇을 하는 것 같다. 그동안은 행복했다. 엄마와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것이. 근데 그건 한계가 있고, 난 엄마한테 하지 못하는 얘기를 남자 친구한테 한다. 엄마한테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점점 줄어든다. 엄마와 노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것이 더 재밌고, 의도적으로 주말 중 하루는 집에서 가족이랑 보내야겠다는 내 생각은 가끔씩 날 옥죈다. 그렇다고 엄마가 싫다는 건 아니다. 좋지만, 나도 아빠나 오빠처럼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난 왜 엄마의 저런 모습을 보고 있을 수가 없을까. 엄마가 선택한 길이지만, 엄마가 당당해졌으면 좋겠고, 고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엄마가 하는 노동의 대가로 깨끗한 옷도 입고 깔끔한 침대에서 잠을 청하지만, 그런 거 없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딸+친구의 노릇을 하기에는 나도 벅차다. 나만의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독립해야 할까?

그럼 엄마는 누구랑 놀지? 우리 가족 분위기 메이커는 누가 하지? 


이기적인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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