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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Sep 06. 2021

#24. 오피스연인

사내 썸.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이 회사 동기랑 썸을 타는데요?

입사 1년 차에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듯이 회사 내 소문과 행동은 심심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아주 빠르게 돈다. 내가 이 가벼운 입들의 무서움을 깨달은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날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내 식당에서 동기 박진영이랑 저녁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고, 그냥 평소처럼 일상 얘기를 하며 밥만 먹고 곧장 퇴근을 하였다. 이게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음 날, 내가 박진영과 저녁을 먹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구두 때문에 발이 아파서 아빠 다리를 하고 밥을 먹었는데, 이런 디테일까지 더해져서 "신입 강서현이랑 박진영이 둘이서 저녁을 먹고 갔다.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근데 강서현은 아빠 다리를 하고 밥을 먹었다"라고 소문이 퍼졌다. 사실에 기반하였지만, 약간의 개인적 생각이 곁들여진 소문은 어느새 내 귀까지 들어왔고, 박진영과의 업무시간 외 만남을 꺼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소문이 빠른 우리 회사에서 사내 썸이라는 것은 정말 위험한 것이었다. 동기 커플처럼 끝까지 꽁꽁 숨기면서 아무도 모르게 만나는 것은 그나마 낫지만, 같은 부서 내에서 대놓고 호감을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 소문의 웅덩이에 뛰어드는 행위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에 용감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 주인공은 위층에 김범준 사원이었다. 

김범준 : 90년생, 남, 미혼, 훈훈한 외모, 솔로 


김범준 사원은 훤칠한 키와 훈훈한 외모로 입사와 동시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가 가십의 중심에 선 이유는가 솔로 시장에서 여자 친구를 찾는다며 자기 PR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격도 좋고, 유머러스하고 부족한 게 없다고 생각할 만큼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식이 아래층에서 근무하는 나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이렇게 잘난 김범준 사원도 시간은 이길 수 없었다. 입사 3개월까지 업데이트되는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도 다른 자극적인 이슈들로 잊혀 갔다. 이런 김범준 사원이 장장 6개월 동안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지분율 70%를 차지한 건 바로 김사원의 동기 박사원 때문이었다.


박희선 : 86년생, 여, 미혼, 결혼하고 싶어 함, 남자 친구 있음. 


박희선 사원과 김범준 사원은 입사 동기이면서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였다. 그러다 보니 유독 둘이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같은 부서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친한 동기 그 이상이었다. 


어느 날 박희선 사원이 주말에 출근을 하였다. 그날 점심 경에 김범준 사원이 도넛을 사들고 출근을 하였다. 그는 출근하여 박희선 사원에게만 도넛을 건네주고 같이 점심을 먹은 후에 퇴근하였다. 출근을 했다기보다 박희선 사원을 보러 회사에 들른 것이었다. 이런 과감한 애정공세는 주말뿐 아니라 평일 업무시간에도 계속되었다. 


박사원이 업무분장과 업무량으로 힘들어할 때 김사원이 나서서 박사원의 일을 나눠서 해주기도 하였고 박사원이 남자 친구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 부서원들 앞에서 진심 어린 눈빛으로 헤어지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이 정도면 대놓고 좋아한다고 티를 내는 정도였고, 연인이 있는 사람이 회사에서 다른 이성과 친밀하게 지낸다는 스토리는 당연히 회사 사람들에게 재밌는 먹잇거리였다. 


김사원이 박사원에게 꽃을 주면서 좋아한다고 고백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기정 사실화되었다. 소문들이 김사원과 박사원의 귀에도 들어갔지만, 그 둘은 딱히 불편한 기색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오피스 보이프랜드를 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창피해하지 않는 그 둘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였다. 오히려 박사원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출장을 가거나, 잡일을 할 때 박사원은 항상 김사원에게 SOS를 쳤고, 그들은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들을 즐겼다. 김사원과 박사원은 종종 사내에서 약간의 스킨십을 하기도 했는데, 회사 내 하이에나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목격한 것을 전달하였다. 이럴수록 박사원이 남자 친구와 언제 헤어지는지에 귀추가 주목되었다. 


그렇게 3개월가량이 흘렀다. 소문은 이미 사실이 되어서 김사원과 박사원의 러브스토리도 한 물 지나갈 무렵 다시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박사원이 임신을 한 것이다. 평소에도 빨리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싶어 한 박사원의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박사원이 남자 친구의 아이를 가졌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뉴스였다. 임신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사람들의 동공은 일제히 김사원을 향했고, 김사원은 그날 휴가를 냈다. 


누가 봐도 여주인공을 뺏긴 비련의 남주인공이었다. 그날 이후 김사원과 박사원이 같이 있는 모습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박사원이 김사원에게 청첩장을 건넸지만, 김사원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 소문에는 박사원의 남편분이 김사원의 존재를 알고 증오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김사원이 일방적으로 박사원을 쫓아다니고 좋아한다고 알고 있었다. 

 

오피스 와이프/허즈밴드라는 존재는 연애의 참견이나 네이트 판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모두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였고 내 주위에도 충분히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할 만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조만간 김사원의 얼굴을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썸 타던 회사 동기가 다른 남자랑 임신해서 결혼해요."


나와 박진영처럼 아니 뗀 굴뚝에서도 연기가 나는데, 팔팔 끓는 가마솥에는 연기가 자욱할 것이다. 회사에서 열렬한 썸을 탄 두 분에게 혹은 앞으로 썸을 타고 싶어 할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사내에서의 눈에 띄는 행동은 언제나 위험해요. 위험을 감수하실 거면, 이왕이면 해피앤딩으로 마무리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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