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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쿰척 Sep 03. 2021

#23. 불편하고 거북한데 어디에 신고하면 되나요?

차에서오줌 싼이야기를 제가 왜 들어야하는 거예요?아시는 분?


회사생활 내의 잡담은 정신건강에 옳지 않다. 잡담하는 시간이 주어지면 적어도 한 번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말들을 듣곤 한다. 친구들 간의 대화라면 뭐라고 한마디 하겠지만, 상대가 회사 사람이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 점심시간에도 역시나 그랬다. 


오늘의 주제는 운전이었다. 소중한 점심시간에 쓸모없는 이야기만 계속한다는 것에 심기가 불편했지만, 난 오늘도 리액션 봇으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재미없는 이야기에 핸드폰 5초 다른 사람들 5초 쳐다보기를 반복하였다. 귀도 막고 싶었지만, 귀를 자동적으로 막을 수 없는 인간의 구조적 문제에 오늘도 비탄하였다. 


오늘의 점심시간에 가장 신이 난 건 역시나 박 팀장이었다. 평소에 운전을 자주 하고, 출퇴근도 자차로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주제에도 빠지지 않고 얘기하지만. 그렇게 차는 어떤 차가 좋고, 새로 나온 차는 색은 잘 빠졌지만, 음향이 구린다는 알고 싶지 않은 주관들을 듣고 있었다. 또 고속도로에서는 어떻게 운전하고 벤츠가 고속도로에는 좋지만, 국내차는 그걸 따라올 수 없다느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박 팀장이 TMI에 시동을 걸었다.


> 아, 난 요즘 차에 컵 두고 다녀요. 그 커피 마시고 남은 플라스틱 컵 무조건 하나씩 둬요.

>> 네? (일동 당황)

> 요즘 괄약근 조절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운전을 조금만 해도 신호가 오더라고요?

   오늘 아침에도 잘 사용했어요. 신호등에서 잠깐 일 봤죠. 시원하더라고. 아 서현 씨 앞에서, 너무 사실적인가?

>> 네..


오늘 점심시간에는 유독 여성 부서원들이 약속이 있었고, 커피타임에는 내가 유일한 여자였다. 정말 듣고 싶지 않은 TMI였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아무도 아닌 그냥 회사 동료인 사람의 볼일 얘기를 내가 들어야 하는 것인가. 저런 말 자체를 자랑인 냥 하는 것도 싫은데 심지어 내 상급자라니. 최악의 듀오였다. 커피를 마시고 있다가, 그냥 도로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업무시간이었다. 이럴 때는 점심시간보다 일만 하는 조용한 업무시간이 더 좋다. 박 팀장과 대화를 하는 건 하루에 한 번이 내가 버틸 수 있는 최대이지만, 그 한 번 마저 대화하는 것이 싫어서 난 오늘도 팀장님에게 보고할 내용들을 차곡차곡 모아놨다. 오후 시간에는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보고 건들 만 남아있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팀 보고 내용들이 적힌 다이어리를 한 손에 쥐고 박 팀장님 자리로 갔다.


> 팀장님, 아까 오전에 00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눈 마주치기도 싫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다이어리만 쳐다봤다. 다이어리만 보고 대화를 하는데 계속 불쾌한 시선이 느껴졌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들고 박 팀장을 쳐다보니까, 박 팀장이 내 가슴팍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불쾌한 기색을 하고 몸의 방향을 틀었다. 이제야 박 팀장의 시선도 내 얼굴을 향했다. 보고할 내용이 끝나자, 박 팀장은 일에 관한 코멘트는 하나도 하지 않고, 또 쓸모없는 말을 걸었다.


>> 서현 씨, 그 티셔츠에 쓰여있는 문구 무슨 뜻이야?

> 네? 아 이거요? 글쎄요. 어느 나라 언어인지도 모르겠네요.

>> 궁금하지 않아요? 난 이런 거 보면 항상 궁금하던데. 찾아봐야지~

> 네.


박 팀장은 내 티셔츠 가슴팍에 있는 독일어인지 프랑스어 인지도 모를 글자의 뜻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걸 또 찾아보겠다고 내 가슴팍의 글씨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난 티셔츠를 손끝으로 들어서 최대한 민망한 장면을 피하려고 했으나, 대놓고 쳐다본다는 사실이 너무 불쾌했다. 역시 박 팀장님과의 대화는 언제나 최악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신저를 켰다. 하사원 님한테 욕을 하려고 하는 찰나, 박 팀장이 또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을 걸었다.


>> 아. "좋은 하루네요, 아가씨?"라는 뜻인가 봐요. 뭔가 이상하네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꽤나 오래전에 구매한 티셔츠이지만, 문구에 대해 궁금해본 적이 없다.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가 내 머릿속에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아마 이제 이 옷은 안 입게 될 것 같다.  


오늘은 일진이 사나운 날인 것 같다. 점심시간부터 별 로더니 오후에도 여전히 기분이 안 좋았다. 카페에 가서 민트 초코 스무디를 사다 먹을까 하다가,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각나서 자리에 앉아서 일에 열중하였다. 이 놈의 귀를 막으면 좋으련만, 내 귀는 너무나도 잘 열려있어서 박 팀장님과 하대리님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이번 주제는 결혼이었다. 정말 할 일 없는 사람들이다. 대충 결혼할 때 얼마가 필요하며, 어떤 자세가 필요하고 뭐 그런 이야기였다. 역시나 듣고 싶지 않았다. 대화는 역시나 정도를 모르고 계속되었다. 


> 하대리, 하대리는 결혼 최대한 늦게 해야지. 이제 결혼하면 돈도 못 쓰고 얼마나 잡혀 살겠어. 

>> 아 그니까요.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야죠. 전 결혼 별로 빨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지금도 늦었지만.

> 괜찮아요. 결혼하면 이제 하대리 맨날 야근하겠네. 애라도 생기면 이제 하대리 회사에서 살겠구먼

>> 그러게요. 벌써 끔찍하네요. 

> 요즘은 돈 얼마나 있어야 하나? 여자는 한 2천 있으면 될 거고, 하대리는 집 한 채 준비해둬야겠네


그다음은 귀를 닫았다. 대충 들어도 결혼은 남자가 손해라는 이야기였다. 저런 이야기는 남자들끼리 있을 때도 잘 안 하지 않나?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정말 뒤떨어진 저 사람들이 나와 하루 종일 함께하는 사람이라니. 내 인생도 참 불쌍하다. 


이제는 정말 뭐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사람들한테 본인의 의견과 생각과 경험을 가감 없이 공유하는 저 사람이 이상한 걸까. 그 모든 걸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이상한 걸까. 


이렇게 불쾌하고 거북한 감정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드는데 이런 건 어디다가 신고해야 할까요. 신고할 수는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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