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주식이 아닌데, 왜 손해 볼까 봐 겁냈을까?

by 다감

술집 안은 시끌벅적했다.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 터지는 웃음소리, 여기저기서 오가는 농담. 정신없는 밤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온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았다.

"너 진짜 사랑을 해 본 적 있어?"

잔을 들던 내 손을 멈춰 세웠다.

방금 전까지 귓가를 울리던 옆 테이블의 웃음소리도 아득해졌다.

"갑자기?"

나는 어색함을 감추려 헛웃음을 지었다. 친구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잔을 휘적이고 있었다.

"예쁘면 그게 사랑이지 뭐."

대충 웃어 넘기려 했지만, 친구는 여전히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눈빛엔 장난기가 없었다.


"그런 거 말고. 그냥 이유 없이 좋은 사람 있잖아. 뭐 하나 따질 필요 없고, 손해 볼까 봐 걱정 안 해도 되는 그런 사람."

이번에는 웃으며 넘기기 힘들었다. 술잔을 내려놓고 한참 생각했다.

‘사랑… 진짜 사랑.’


사랑이란 게 참 묘했다. 마음이 생겨도 그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너무 많이 주면 질릴까 봐. 일부러 답장을 늦게 보내기도 했고, 상대도 내게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저울질했다. 연락을 조금 더 자주 하면 상대도 같은 강도로 반응하는지 살폈고, 내가 주는 것보다 덜 하면 기분도 상했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적극적으로 다가오면 부담스러웠다. 너무 쉽게 얻으면 재미없을 것 같았고, 오래 끌면 내가 손해일 것 같았다.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관계가 깊어지려 하면 망설여졌다. 얘는 성격이 너무 극단적이야. 저 사람은 감정 기복이 심해서 피곤할 것 같고. 이 사람은 좋은데, 뭔가 2% 부족해. 관계를 깊게 만들기 전에 손익을 따졌다. 좋은 감정을 갖고도 주저했다. 감정을 주는 게 마치 지출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꼈다.


애정이 고플 땐 쉽게 불을 붙였고, 내가 원한 만큼만 채워지면 어느 순간 자연스레 멀어졌다. 혼자가 싫을 때는 적당한 애정을 나누는 게 좋았고, 감정이 시들면 연락을 끊었다. 미안함보다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었다. 끝낼 때까지 질질 끄는 건 비효율적이었으니까.


기대한 만큼 실망했고, 실망한 만큼 돌아섰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정말로 내가 순수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상대를 좋아한다는 감정조차, 결국은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은 아닐까?

"잘 모르겠어."

솔직한 내 답이었다. 친구는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보자. 네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진짜로 솔직했던 순간이 있었어?"


느슨하게 기대던 몸을 의자 끝으로 옮기며, 자세를 바로잡고 생각에 잠겼다.

솔직했던 순간.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순간. 애초에 내가 누군가 앞에서 그런 적이 있었던가? 사람을 만날 때면 늘 스스로를 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쉽게 보이지 않으려 했고, 너무 많이 주면 언젠가 돌아올 상처가 클까 봐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내가 원하는 만큼만 주고받는 관계가 가장 편했다.

그런데, 그 사람 앞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새벽이었다.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잠이 안 와"

평소라면 내일 연락하겠다고 했을 거다. 자야 하는데, 내일 피곤할 텐데, 굳이 이 시간에 연락을 할 필요가 있나 하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 안 자. 나도 잠이 안 오네."

피곤하기도 했고, 다음 날 일정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냥 옷을 입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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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앞에서 만났다. 따뜻한 꿀물 하나씩 들고 길을 걸었다. 딱히 할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조용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그냥 같이 걸었다.

"별로 할 말 없는데."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편했다.

그 순간 알았다.

나는 이 관계에서 아무 계산도 하지 않았다. 남는 게 없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좋았다. 시간을 아까워하지도 않았다. 그 순간이, 그냥 좋았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관계라니.’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연락을 보낼 때도, 좋아한다는 티를 낼 때도.

부담스러울까 걱정하면서도, 애써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상대가 나를 덜 좋아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좋아서.


그 사람 앞에서의 나는 너무도 솔직했다. 머리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였고,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 따랐다.

그전의 관계들은 늘 무언가 섞여 있었다.

적당한 거리, 계산된 감정, 기대와 실망이 함께 섞여 있었다.

혹시 모를 후회를 대비해 여지를 두고, 마음 한구석을 비워두었다.

하지만, 그 사람 앞에서는 아니었다.

그냥, 그 감정 그대로.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온전히 순수한 나였다.

나는 그 사람을 좋아했던 걸까?

어쩌면 그 사람 앞에서의 나를 좋아했던 건지도 모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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