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빠졌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했고, 내 손은 핸들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내비게이션에 집중하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한 박자 늦었다.
“미안, 다른 길로 가면 돼.” 나는 침착한 척 말했다.
“그러니까 왜 미리 안 봐?” 그녀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꾸했다.
“이러다 약속에 늦으면 어쩌려고?”
나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알았어. 미안. 금방 도착해.”
그녀는 잠잠해졌지만, 기분 좋은 침묵은 아니었다. 뒤차의 경적 소리가 길게 울렸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그녀를 돌아봤다. 창밖을 보는 그녀의 옆모습이 어딘가 더 날카로워 보였다.
그날 밤, 그녀가 없는 사이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작은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 잘 정돈된 그녀의 물건들이었지만, 노트는 펼쳐진 채로 있었다. 나는 망설이며 노트를 보았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들지? 화를 내도, 안 내도 답답한 건 똑같아.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걸까?’
나는 노트를 조심스럽게 덮었다. 그녀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그제야 그녀의 짜증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녀 안에서 ‘무언가 부딪히고 있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묻진 않았다. 어쩌면 나도 겁이 났던 것 같다.
며칠 후, 우리는 드라이브를 나갔다. 이번에도 나는 또 길을 잘못 들었다.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 또 잘못 들었다. 미안. 바로 돌아갈게.” 나는 반사적으로 사과했다. 혹시 그녀가 또 짜증을 낼까 봐 긴장한 채로 핸들을 잡았다. 그런데 그녀는 잠시 내비게이션을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응, 괜찮아. 다른 길로 가도 금방 도착하겠지.”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로 괜찮다는 듯 부드러웠다. 나는 핸들을 잡은 채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게 낯설었다. 화를 참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우리는 산책을 나왔다.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요즘 조금 달라진 것 같아.”
나는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감추려 장난스레 말했다.
“맞아, 근데 안돼. 사람이 변하면 죽어.”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이야기했다.
“나한테 너무 가혹했던 것 같아.”
“내가 너한테 화를 냈던 건, 사실 너 때문이 아니었어. 내가 나 자신한테 화를 내고 있는 거였어.”
그녀는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이야기했다.
“나는 늘 완벽하려고 했어. 내가 실수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너한테도 이 완벽함을 투영하려 했던 것 같아. 근데 이제 조금은 내려놓으려고 해.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려고.”
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가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신기하게 너한테도 화가 덜 나더라. 내가 나를 그리고 너를 힘들게 하던 거였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녀의 변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와의 관계를 바꾸려 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바꾼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둘의 관계를 바꾸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그녀의 말을 자주 떠올렸다.
“너도 너한테 조금 더 관대해져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