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십자가
그렇게 난... 집을 뛰쳐나와 정신없이 걸었어.
막상 집을 나오니, 갈 곳이 생각나지 않았어.
시간은 새벽 1시...
이 시간에 밖을 나가본 건 처음이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새벽은 날 집어삼킬 것만 같았지....
막막함이 나를 덮을 때쯤... 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어..
얼마 전 점심시간에 나에게 웃으며 말 걸던 그 아이... 주안이.
"점심 먹었어?"
"응. 아까 먹었어. 얼른 공부하려고...."
"아, 이거 주려고.... 교회에서 3주 뒤에 새 신자 초청 음악 공연이 있어. 네가 자꾸 생각나길래...."
"아.... 공부 때문에 힘들 것 같아."
" 아쉽다.... 사실 교회가 우리 집이라... 오고 싶으면 언제든 놀러 와.."
학교에서 공부 외엔 딱히 친구에겐 관심이 없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아이... 그 친구가 생각났어.
'무슨 교회라고 했지.... 이 근처라고 했는데...'
그렇게 난 얼마 전에 들었던 교회 위치를 어렴풋이 기억하며 길을 걸었어.
어스름한 새벽, 주위는 한밤중의 어두운 공기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때...
저 멀리서 빨간 십자가 하나가 보였지..
난 무작정 교회 문을 두드렸어.
교회는 작고 아담했어.
"계세요....?? 누구 안 계세요....?"
난 초조한 마음에 그렇게 몇 분 간 문을 두드렸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안에서 인기척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어.
"안녕하세요.? 전... 주안이 친구 김이찬입니다."
난 그분이 목사님이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었어.
그분의 눈이 따뜻했거든.
목사님은 나를 바라보셨어..
두 눈은 곧이어 핏물이 물든 티셔츠와 바지를 한 동안 그저 말없이 바라보셨지.
목사님 눈을 바라보았어.
어느새 목사님 눈이 촉촉해지셨어.
"들어오렴...."
교회 안은 무언가 따뜻한 공기가 맴돌았어.
은은한 조명과 몇십 개로 보이는 의자, 맨 앞쪽에 보이는 강대상과 나무 십자가...
목사님은 잠깐 있으라고 얘기하시고선 어디선가 따뜻한 차를 가지고 오셨어.
차의 향긋한 향기가 온몸에 전해지고, 내 마음을 달래주는 듯했어.
차를 마시는 나를 목사님은 지그시 바라보셨어.
"이찬이라 했지?
내가 기도해 줘도 되겠니....?"
목사님의 눈을 봤어.
어디선가 본 듯한 해맑고 영롱한 눈빛이었어.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면서 목사님은 내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하셨어.
손에 온기가 전해졌어. 마치 내 마음을 아는 듯한 포근함이었어.
목사님의 기도가 시작되었어.
"주님... 우리 사랑하는 이찬이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이 아이의... 마음에..."
처음과는 달리 목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떨리시더니... 기도가 멈추었어....
목사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게 느껴졌어.
가까스로 기도가 끝나자, 목사님은 나를 몇 분 간 꼭 안아주셨어.
너무나도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사람의 품이었어.
그 따뜻함이 좋으면서 너무 어색했어.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알 수 없는 눈물이 났어.
그 순간 쓰러졌던 아빠가 스쳐 지나갔지....
"목사님, 기도 감사드려요. 저 이제 가봐야 될 것 같아요."
"그래, 언제든 오고 싶을 때 다시 오렴. 목사님이 기다리고 있을게."
그렇게 정신없이 교회를 나서려고 하자 목사님이 등뒤에서 황급히 얘기하셨어.
그 순간, 뇌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듯했어.
내가 그토록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그 말... 바로 그 말을...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듣게 되다니....
난 북받쳐 올라오는 알 수 없는 감정과 감당할 수 없는 눈물에 고개를 떨구며, 무작정 뛰었어.
마치 저 깊숙이 누가 볼까 봐 꽁꽁 숨겨든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았어. 그 말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창피했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이 말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울고 또 울었어.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
그동안 서러움에 꾹꾹 눌러놓았던 슬픔이 저 깊숙한 곳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로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어.
"엉엉엉엉엉...
나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나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
나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라고요!!
제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달라고요!!"
그렇게 통곡하며, 난 허공에다 소리를 질렀어.
한없이 눌러 찌그러져있던 내 영혼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살아나는 것 같았어.
영혼의 숨이 쉬어졌어.
아주 조금씩...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