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
악몽이 시작되었어.
폭언과 폭행의 악몽이 시작되었어.
그렇게 악몽은 중학교부터 고등학생인 지금까지 쭉 이어졌어.
어느 날은 술에 잔뜩 취하신 아빠가 나를 불러 공부를 제대로 안 한다고 혼내셨어.
그러더니 갑자기 손에 잡히는 아무 물건으로 나를 때리기 시작했어.
아빠의 눈은 어릴 때 내가 본 영롱한 눈빛이 아니었어.
그 안에 검붉은 분노와 혈기가 가득했어.
"이 자식! 중간고사가 코 앞인데, 요즘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 거냐??
집중도 제대로 안 하고! 할당 공부량도 점점 줄어들고!!
너 같은 놈은 맞아야 돼! "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빠가 거친 매질을 할 때마다 내 몸의 살점은 찢기고 피가 쏟아졌어. 어느새 붉은 핏물이 옷에 물들기 시작했지.
때릴 때마다 내 핏물이 펌프질 하듯 흘러나왔어. 온 공기가 피비린내로 가득했어.
처음엔 아빠의 걱정으로 내가 맞는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얼마 안 가 알게 되었어. 그저 아빠의 분노가 담긴 매질이란 걸...
난 기쁨 새니깐... 아빠가 분이 풀릴 때까지 맞아야 된다 생각했어.
그런데... 그런데...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맞는 동안, 갑자기 너무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어....
쉬지도 못한 채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나 자신이 떠올랐고...
점점 스스로를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공부를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해 공부를 해야 되는 이유는
찾을 수 없었어. 맹목적으로 그저 살아가는 생각이 들었어.
마치 껍데기만 남은 인형처럼...
'난 무슨 삶을 살고 싶은 거지....? 대학 이후의 내 삶은 무엇일까....? 아빠가 원하는 서울대 의대를 간다면, 결코 내 삶이 행복할까....? 내가 원하는 삶은 무엇이지....?'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과 나 자신을 위한 생각들이 교차하고, 어긋나고, 혼란스러울 때쯤...
난 아빠에게 반기를 들었어.
갑작스러운 허무함과 분노가 치밀었어.
난 무의식적으로 때리던 아빠의 손을 잡고선 고함을 질렀어.
그러고선 나도 모르게 아빠가 쥐고 있던 물건을 뺏어서 아빠를 향해 힘껏 내리쳤어.
아빠는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주저앉으셨지.
당황한 아빠의 눈을 외면한 채, 집을 뛰쳐나왔어.
더 이상은 참을 수도 견딜 수도 없었어. 숨조차 쉴 수 없었어.
나도 이제 살아야겠어....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