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과 돌
“그런데 좀 무서워 보인다. 저런 그라인더로 막 돌 짜르고 그러는 거예요? 망치나 정으로 떙떙떙 하는 게 아니라?”
“네. 현대 과학 문명 활용할 줄 알아야죠. 그리고 난 미켈란젤로가 아니라서....”
“그런데, 학장 지금 되게 우낀 거 알아요?”
“뭐가요?”
“머리랑.. 얼굴이.. ㅎㅎㅎ”
돌 조각을 하게 되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돌가루로 뒤집어 쓰게 된다.보안경과 마스크를 쓰기 때문에 눈과 입만 빼고 하얀 돌가루가 얼굴 전체를 덮는다.
“아..이거…”
“상아씨.야.. 그거 알어? 학생 식당에서 우리 조각과는 오지 말라고 하는거?”
“? 왜요?”
“먼지 날린다고 오지 말래. 오려면 샤워 하고 오래”
“아~~~ 그러네 ㅋㅋㅋㅋ”
우리과에 샤워실이 있는 이유다. 말이 샤워실이지 화장실에 샤워 호스를 설치 해 줬다.
“상아는 왜 아직도 있어?”
“학장이 말한대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생각 해 보고 있었어요. 근데 밖에서 '위잉' 소리 들리길래 보니까 학장 혼자 있길래 내려 와 봤어요.”
선배 놀음을 제대로 한거 같아 어깨가 펴진다.
“참 학장. 내일 리포트 다 썼어요?”
맞다. 리포트. 그녀는 다 썼을까? 내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응. 참. 리포트봐 달라며.”
“아뇨. 괜찮아요. 혼자 해 봤어요. 그리고 제 동생 국문과 잖아요. 동생이 많이 봐 줬어요.”
내가 k2소총을 들고 있는 예비역 이라면 그녀의 동생은 m60을 들고 있는 현역이었다는 것을 깨닳았다.
“다행이네”
“학장은 집에 안가요?”
“응 이제 시작한거라. 좀 더 하고 가려고요“
“학장. 축구 잘하더라?”
“응??”
“아니, 아까 보라 선배가 운동장 갈 건데 같이 갈래요 하는 거야. 운동장 한번도 안가봐서 그냥 따라 가 봤는데 학장이 거기 있더라? 그래서 봤어.”
“아.. 그랬구나.. 체대 학장 형이랑 가끔 같이 축구해요. 형이랑 친해서..”
“와 학생 회장은 친한 사람도 많은가봐?”
“아뇨.. 형은 그냥 예전부터 친했어요.”
“부럽다. 나도 다른 과 친구 사귀고 싶다.”
“그래요, 나중에 인사 시켜 줄게요.”
“진짜?? 와 기대돼요. 그럼 작업 방해 안할게요. 내일 수업때 봐요”
맙소사. 말이 정말 씨가 되려나? 체장형이랑 진짜 밥 먹어야 하나?? 이번엔 누구 장난이야??
밤 9시. 우리 미대 건물 불이 다 꺼진다. 경비 아저씨가 오셨다.
“학생. 이제 가.”
“넵”
야간 작업은 9시 까지다. 수업도 하고, 축구도 하고, 작업도 하고.. 오늘 잠 잘 올거 같다.
휴대폰 알람이 또 운다. 매일 아침 듣는 이 소리가 이제는 지겹지도, 싫지도 않다. 너무 익숙해졌다 랄까? 마치 몇 년 전 학교를 가야 하는 나를 깨우는 엄마의 비명 소리처럼 마냥 당연한 듯하다.
'오늘 무슨 요일 이더라... 오늘 수업이...아! 미술비평.'
누가 보더라도 세수는 했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만 씻고, 누가 보더라도 빨래는 하고 다니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옷만 입고 집 밖으로 나선다. 벚꽃 나무는 벌써 초록색이 되어 가지만, 나무가 있는 그 길 바닥은 아직 남아 있는 꽃잎 덕분에 핑크색이다. 저번 주 생각이 난다. 핑크색 옷이..
학교 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도착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좀 오래 걸릴 것 같다. 다리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어제 축구들 너무 열심히 했나보다.
내가 있어야 할 미술대학 건물은 학교 끄트머리에 있다. 왜 구석에 박아 놓았는지 신입생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미대생들의 모습을 가려야 했기에 잘 안 보이는 곳에 넣어 놓은 것 같은 합리적인 의심이 3학년이 된 지금 든다. 무거운 다리를 가지고 학교에 도착한 나는 내 아침 루틴인 빨간색 자판기 믹스 커피를 뽑고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인 후 건너편 나무를 무심히 보는 척하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녀를 기다린다.
미술비평 수업이다. 그녀는 오늘도 앞에 앉아있다. 예전과 다른점이라면 보라랑 많이 친해졌는지 같이 앉아 있다.
“ 혹시, 김희석 작가님 찾아 뵌 학생 있어요??”
안녕하세요. 인사 후 임재순 선생님의 첫 말이었다.
어? 왜 그러시지?
20명 남짓 되는 학생들 중 나와 그녀만이 손을 들었다.
그녀는 뒤 돌아 나를 보았다.
“아.. 너희 구나. 선생님 아니, 작가님이 전화가 와서. 니네 학교 애들 왔다 갔다고. 자기 까러 왔다고. 점수 잘 주라시더라“
오~~~~
나와 그녀를 제외한 그 강의실에있는 아이들이 내지르는 소리다.
“작업물 보고 내가 판달 할게. 걱정마 선생님께는 안보여 드릴게.” 창피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5장 정도 되는 리포트를 선생님께 제출하였다.
“너가 학장이라며?”
“네 그렇습니다.”
“나도 학장이었어. 힘들지?”
“아. 아뇨 재밌습니다. 저… 선생님 꼭 뵙고 싶었습니다.”
“날?? 왜?? ”
“저 1학년때 선생님 작업 보고 반했었거든요. 신기 했어요.”
“오 그래??? 내 그림 좋아하는 대학생도 있네?? 자네 집이 어디야?”
“서울 입니다.”
“나중에 작업실 한번 와. 구경 시켜줄게”
“정말요?? 감사합니다!!”
이게 왠 떡이냐. 임재순 작가의 작업실에 초대를 받다니. 벌써 흥분이 되고 기대가 된다.
오후 수업을 준비 하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문자가 온다.
띠링.
-대박. 학장. 아까 선생님이 하는 얘기 들었지? 그 작가분이 선생님한테 전화 했나봐!! 대박이다. 그치?-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답장을 한다.
- 더 대박 알려줘요? 선생님이 작업실에 우리 초대 했어요- 전송.
띠링.
-에??!!! 우리를??!!!대박!!!!-
어?! 잠깐.잠깐. 우리?? 우리?? 아… 잘못 썼다. 우리라고..이제 와서 '아니 아니 나 초대 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걸 어쩌지?…
차분하게 답장을 한다.
-다른 아이들한테는 이야기 하지 말아요. 괜히 오해 살 수 있으니..- 전송.
띠링.
-당연하죠-
에이 모르겠다. 다음주에 가는 것도 아니고 그때 가서 고민하자.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있는데 원희가 들어온다.
“야. 콜라나 한잔 하자.”
원희는 뭔가 안풀리면 항상 콜라를 찾는다.
“왜, 또.”
“아, 용접봉 없어.“ 원희는 철 용접을 한다. 철 작업을 하는 원희에게 용접봉이 없는 것은 돌작업하는 나에게 그라인더 날이 없는 것과 같다.
원희랑 편의점까지 걸어간다.
“학장!”
누군가 나를 부른다. 아니. 이 목소리 아는 목소리다. 그녀다.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어느 여자와 함께 있었다.
"안녕하세요~"
모르는 여자가 밝게 인사를 한다,.
아 예. 원희랑 나는 허리만 살짝 숙이고 그녀와 그녀 옆에 있는 그녀를 보았다.
“아, 원희 선배님도 같이 있구나.. 아. 제 동생. 국문과.”
“아~~~~~ 안녕하세요!”
“상아 언니한테 이야기 진짜 많이 들었어요. 많이 도와 주신다고요.”
“아 아뇨..그냥 뭐…”
“저는 동생이랑 점심 먹으러 가는데 선배들은 어디 가요?”
“우린 뭐.. 편의점…”
“아~ 그럼 저희 갈게요~”
그녀와 그녀 동생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거리며 총총총 걸어 간다.
“야 뭐냐. 쟤 걔 아냐?”
“어. 맞아.”
“너 친해?”
“신입이잖아..학과장님이 많이 챙기래..”
원희는 우리 과에서 제일 친한 동기이지만 그녀 이야기를 한적은 없다.
내가 원희를 좋아하는 이유는 원희는 항상 보고만 있는다.
내가 뭘 하든 지켜봐 주기만 한다.
괜히 원희에게 미안해 진다.
“야. 너 쟤.. 막 그러냐?”
“뭐래. 가자,”
“이새끼.. 이거… ㅋㅋㅋ”
“아냐, 병쉰아”
”제창이 형한테 일러야지 ㅋㅋㅋ“
제창이 형은 체장형이다. 이름은 박제창. 재밌게 호칭이 체장이다.
들켰다.
체장 형 이후로 두번째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원희는 지켜만 본다. 형한테 이야기 안한다.
시간은 잘 가더라. 그날 이후 그녀와 난 특별한 만남이 없었다. 빨간 자판기 앞에서 인사 하는 정도 밖에 없었다. 다행히 원희도, 체장형도, 보라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엠티 준비만 잘 하고 중간 고사랑 기말 고사만 잘 준비하면 모든것이 퍼펙트 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중심이고 그녀는 내 위성이다. 일은 일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