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났다고 생각해야 했는데,
나는 자꾸 너에게 갈 이유를 만들었다.
평소처럼 요거트를 만들다가
네가 내가 만든 요거트를 좋아한다는 걸 떠올렸다.
마침 마트에서 산 샤인머스켓이 유난히 실했다.
그것을 한송이 집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건 그냥 선물이다.
말을 길게 하지 말자.
주고 오기만 하자.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하고
택시를 타고 너의 집으로 갔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자,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너는
당황한 표정이 숨길 마음도 없이 얼굴에 남아 있었다.
“왜 말도 안 하고 왔어?”
나는 손에 든 봉지를 들어 보였다.
“그냥… 이거 주고 싶어서.”
너는 요거트를 받아들고도
문을 더 열어주지 않았다.
“고마운데, 집에 가.”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아팠다.
“나 방금 택시 타고 왔는데.”
“응. 가줘.”
나는 웃을 뻔했다.
지금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럼… 데려다줘.”
“역까지만.”
그 순간,
그동안 밀봉해두었던 서운함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 올라왔다.
“나 집까지 데려다줘.
내가 맨날 여기까지 오잖아.
너 우리 동네 몇 번이나 와봤어.
손에 꼽힐 정도야.”
내 목소리가 커지는 게 싫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는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정리해둔 내 짐, 다 챙겨가.
너 온 김에 가져가.
"나 피곤해
오죽하면 택시 타고 여기까지 왔겠어.”
너는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
그 표정이
미안함인지, 피곤함인지
나는 끝내 구분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헤어진 사이였다.
너의 커리어를 위해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먼 나라까지 와서
끝까지 버티며 쌓아온 너의 시간.
그게 너에게 얼마나 큰지.
하지만 마음은 늘 다른 질문을 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정말 나는, 이렇게만 남겨져야 했을까.
너는 “나를 생각해서”라고 말했다.
그 말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떠난다는 말은
언제나 미래형이었고,
나는 늘 그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남았다.
수 없이 떠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런데 떠나지 않았다.
말이 바뀔 때마다
내 마음도 같이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너를 놓지 못했다.
첫 순간의 너.
거절당할까 봐 조심스러웠던 고백.
나와 있으면 바보가 된다며 웃던 얼굴.
굳은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근성.
싸우다가도 결국은 내 쪽으로 기울던 배려.
무엇보다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를
조용히 끌어올리던 손.
그 손이
내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받은
‘구원받았다’는 감각이었다.
나는 그 감각을
잃을 자신이 없었다.
갓 태어난 새끼 코끼리에게
어미 코끼리는 하늘이자, 세상의 전부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건져낸 사람이 너였던 날 이후,
너는 내게 어미가 됐다.
나는 아직
혼자 서는 법을 완전히 배우지 못한
새끼 코끼리였다.
그래서 자꾸,
너의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