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홀씨처럼

by tracebraise




그는 달려오는 나를 붙잡았다.


그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전화를 왜 안 받아…

내가 몇 통이나 했는데…”


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해. 전화 온 줄 몰랐어.

가방 안에 있었어. 울지 마.”


우리는 다시 그의 집으로 올라갔다.


구두를 벗자

발은 시뻘겋게 까져 있었다.


피부가 벗겨져

더는 제대로 걷기도 어려웠다.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고

화장은 번져 있었다.


옷은 땀에 젖어

몸에 달라붙었다.


그런데도

그가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만으로

일주일 내내 마음속에 내리던 비가

조금씩 멎는 것 같았다.



현관 앞에서

구두를 힘겹게 벗고

찬물에 발을 씻고 오자

그가 무심하게 말했다.


"이리와서 여기 앉아봐"

"왜?"

"발이 너무 부었어 발마사지 해줄께."


평소 같았으면 사양했을 텐데

열다섯 시간 가까이 구두를 신은 나는

끝내 발을 맡기고 말았다.


따뜻한 젤이

벌겋게 부은 발 위로 천천히 퍼졌고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발을 감쌌다.


그 순간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졌다.


그의 작은 친절 앞에서

나는 자꾸만

우리가 끝나지 않았다고 착각했다.



그래서 였을까?


노란 꽃망울이

하얗게 변해 홀씨가 되어가듯

너와 내가 머물렀던 그 집도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나만 그 안에 더 오래 머물고 있었다.


튼튼한 솜털을 가진 그의 홀씨는

이미 떠날 준비를 거의 마쳤다.


강한 바람만 불면

멀리 날아갈 수 있을 만큼.


그에 반해

비에 젖어버린 나의 홀씨는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그 자리에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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