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박? 대박!-자카르타 슈퍼에서

-한류 사랑과 오지랖


오빠와 IC



“데박”이라고 쓰고, “대박”이라고 읽는다

요즘 자카르타는 한글이 자주 나타난다.
특히 K-드라마와 K-팝의 인기 덕분에
이제는 동네 슈퍼에서도 한글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물을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세제 코너 근처 벽에서 뭔가 반가운 낯익은 글자가 눈에 띄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가까이 다가가 봤더니…

“데박”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 훗!
그들이 전하고 싶었던 건 분명 ‘대박’이었을 것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감탄사.
그런데, 틀렸다.

대’가 아니라 ‘데’라고 쓰여 있었다.
무려 이 포스터에서 유일하게 쓰인 한국어 단어가 그것 하나였는데, 그게 틀렸다.




오지랖 발동! 나는 오늘도 참견합니다

사실, 이런 실수는 익숙하다.
‘케이팝’은 ‘KPOP’이라 쓰고 ‘꺼뽑’이라 읽고,
‘김치’는 가끔 ‘깁치’나 ‘킴쯔’로 변한다.

하지만 벽에 뙇! 붙은 포스터 가운데
알파벳과 하트 무늬 사이에서 “데박”이라는 한글이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걸 보자,
또 나의 오지랖 본능이 꿈틀거렸다.
이놈의 성격.


가만 못 있는 나는 계산하면서 결국 직원에게 말했다.
“Maaf ya, itu tulisan Korea-nya salah.”
(죄송하지만, 저 한국어 글자가 틀렸어요.)

점원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Itu dari pusat, Bu. Saya kurang tahu.”
(그거 본사에서 온 거라 잘 몰라요.)




종이 한 장

여기서 끝났으면 내가 아니지.
직원에게 ㅓㅣ인지 ㅏㅣ인지 설명해 봤자 복잡할 테니
나는 가방 속에서 펜과 메모지를 꺼냈다.
그리고 조용히 적었다.

Salah : 데박 = ㅓㅣ (DeBak) X
Benar : 대박 = ㅏㅣ (DaeBak) O
본사 홍보팀에 꼭 전해주세요!

직원은 종이를 받아 들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Wah Bu, baik sekali ya… nanti saya kasih tahu atasan!”
(와, 진짜 친절하시네요. 나중에 상사한테 꼭 말씀드릴게요!)

그제서야 속이 시원했다.
이럴 때 나오는 국뽕!
"역시 나 한국인~!" 하는 그 묘한 감정.




대박의 남용 – IC 남발 사건

비슷한 시기,
한류를 주제로 한 Zoom 세미나에서도
‘DAEBAK!’이라는 말이 정식 제목으로 쓰였다.

요즘 이런 한글 사랑은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가끔 복잡한 감정이 든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뜻도 모른 채 마구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나의 인도네시아어 레슨 선생님이 대화 중에 자꾸 “IC”를 해댔다.

펜을 떨어뜨려도 IC, 타자 실수를 해도 IC.
그녀는 석사 졸업 후 대학에서 인도네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수님이었다.
고민 끝에, 또 오지랖 발동.
“혹시… IC가 무슨 뜻인지 알고 쓰시나요?”

그녀는 당황했다.
그 후로 그녀의 입에서 더 이상 IC는 나오지 않았다.




‘오빠’가 왜 여기서 나와?

또 한 번은, 현지 여성이
처음 본 내 남성 한국인 동료에게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오빠, 오빠~” 했다.

어느 날은 남자 현지인이 나에게 “오빠~”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나의 오지랖 레이더는 또 작동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는 것이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면서, 기분 상하지 않게,
그 적정선이 늘 어렵다.




오지랖의 딜레마 – 어디까지가 적정선일까?

드라마와 유튜브로 익힌 한국어는
인도네시아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그 애정은 고맙고 반갑다.

하지만, 단어의 의미를 모른 채 사용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나는 늘 딜레마에 빠진다.

"지금 말해도 될까?"
"혹시 무례하게 들릴까?"
"아니면 지금이 적기인가?"

오지랖의 선은 어디까지일까?
고민은 계속된다.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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