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자격

-전화 한 통, 마음 한 조각


한국에 계신 친정 부모님과의 연락은, 살다 보면 그렇게 그냥 지나간다. 명절이나 생신, 혹은 특별한 날에나 카톡을 보내거나 전화를 드리는 정도. 예전엔 카카오톡 같은 게 없었기에, 국제전화 요금은 비쌌고, 통화도 눈치 봐가며 짧게 끝내야 했다. 전화요금 고지서엔 국제전화 사용 내역이 적나라하게 찍혀 나왔다.

결혼 초엔 한국 시댁에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다고 남편과 시댁에서 살짝 타박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곧 알게 됐을 것이다. 내가 비단 시댁뿐 아니라 친정에도 자주 연락하지 않는다는 걸. 어쩌면 전화요금 내역서를 보고 나중엔 ‘원래 그런 애’라고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나는 특별할 것 없는 회사원이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던 시절, 나도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하루를 살았다. 미래도, 희망도 없이 그저 그런 한 인간으로.

하지만 이곳,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달랐다. 해븐 자카르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누군가 나를 숨 막히게 조이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조금 더 여유로웠다. 그게 나에겐 자유였다.


23년이 흘러,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 카카오톡으로 무료 통화도 가능하고, 얼굴 보며 영상통화도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은 친정엄마와 통화를 자주 하게 된다.

30분, 1시간씩 통화를 하며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눈다. 엄마는 속상한 일, 답답한 일, 화나는 일을 풀어놓는다. 이제 나도 엄마가 되어, 엄마의 말과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들을수록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엄마에게 일이 생겼을 때 바로 달려가 같이 해결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같이 손잡고 병원도 가고, 시장도 가고, 서류도 떼러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어제저녁, 엄마와의 통화에서도 그랬다. 마음이 아리고, 답답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엄마의 유일한 딸은 나 하나뿐인데, 한국에 있는 세 살 많은 오빠는… 내 마음에는 차지 않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외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인 나는, 감히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