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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젖은 청년의 웃음

-You•C1000



"띠링"




문자가 울렸다. 택배가 집 앞에 도착했다는 알림과 함께 사진이 도착했다.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고 소포 박스를 확인하러 문을 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흔히 보는 택배는 오토바이 배송이다. 보통은 집 앞에 물건만 두고 곧장 다음 배송지로 향하기 때문에 기사 얼굴을 마주할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문을 열자 건너편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햇볕 아래 쭈그리고 앉아 쉬고 있는 젊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감사 인사를 건네고 들어왔지만, 냉장고 안 시원한 비타민 음료가 떠올랐다. ‘주면 좋아하겠지?’ ‘괜히 오지랖처럼 보일까?’ 10초 정도 망설였다. 더 이상 남을 챙기는 걸 습관처럼 하지 않으려던 나였지만, 결국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비타민 음료 한 병을 들고 다시 문을 열었다.

“Mas, bentar ya… ini buat Mas.”

(잠시만요… 이거 드세요)

그는 두 손으로 받아 들며 활짝 웃었다.

“Makasih, ya!”

(고맙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땀에 젖은 청년의 웃음을 보니 괜히 마음이 짠했다. 요즘 잦은 데모와 혼란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츨처 : istockphoto.com




오후에는 갑자기 달달한 게 당겨 배스킨라빈스를 앱으로 주문했다. 문제는, 처음 쓰는 앱이라 주소를 잘못 찍은 것. 앞 단지로 지정되어 버린 거다.

배달 기사에게 전화가 왔다.
“거기는 배송 지정지가 아니잖아요. 앱 주소가 잘못되어 있는데요…”

빙빙 돌려 말했지만, 결국은 추가 배송비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이미 배송료 17,000루피아를 결제했는데, 더 달라고 하기도 애매하니 돌려 말하는 것이다.

“Baik, Mas. Saya akan tambah 10 ribu”(좋아요, 만 루피아 더 드릴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알았다고 하고 아이스크림을 배송해 줬다. 현금을 받으며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씁쓸했다.

추가 비용을 직접 달라고 하기는 어려웠던 그는 아마 자바 출신일 것이다. 바탁 지역 사람이었다면 아마 직설적으로 “추가 비용 주세요”라고 바로 말했을 텐데.

아무튼,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보니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인도네시아 배스킨라빈스는 간판엔 분명 31가지라고 적혀 있는데, 막상 고를 수 있는 건 많아야 여덟 가지 맛 정도다.



거기다 가격은 왜 이렇게 비싼 걸까. 한국에서는 만 원 정도이면 큰 통 하나를 살 수 있는데, 여기서는 같은 크기가 무려 32만 루피아(원화로 약 27,000원)라니. 맛은 분명 있는데, 지갑은 쉽게 열리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3년 전, 내가 처음 인도네시아에 왔을 때를 떠올려 보면 지금은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싶다. 그때는 직접 나가 땀 흘리며 사야 했을 물건을, 이제는 앱 하나로, 배송료 조금만 더 내면 집 앞까지 배달해 준다.

세상 좋아졌다.


그리고 오늘도, 작은 정 하나가 누군가의 웃음이 되었다.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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