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조직의 사용설명서

사택... 누구를 위한

by 한그루

출근하자마자 김 과장이 숨을 몰아쉬며 나를 찾았다.

“이사님, 대표님이 출근하시면 바로 회의실로 오시랍니다.
아침부터 이렇게 일찍 오신 거 보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요. 표정도 좋지 않으시고.”

뜻밖이었다.
전날까지 아무 소식도 없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공기가 묘하게 무거웠다.

회의실 문을 열자 이미 네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감우성 전무, H, 김 과장, 그리고 진고동 대표.
우리는 다섯 명이 동그랗게 앉아, 침묵을 건드릴 사람만 기다렸다.

그리고 곧, 한 사람이 뒤늦게 씩 들어왔다.
또또였다.
그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영업이 요즘 잘 돼서 그런가?” 같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 과장이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라산 조선 매출이 100억을 넘어요. 그 입 좀….”

영업 성과가 자기 공인 양 떠드는 또또를 향한 ‘입 좀 다물라’는 신호였다.

■ 100억 매출의 이면, 70억 부채

회의는 감우성 전무의 한마디로 시작됐다.

“대표님, 매출이 100억입니다. 그런데 부채가 70억입니다.
외부감사가 코앞인데… 이 상황을 어떻게 막으실 생각이십니까?”

순간 공기가 출렁였다.
그렇게 ‘깨끗한 회사’라며 노래 부르던 진고동 사장은 입을 다문 채 눈만 굴렸다.
감우성 전무는 이어서 문제의 본질을 찔렀다.

리조트 회원권, 골프 회원권, 리스 차량, 그리고 또또가 살고 있는 사택.

“회원권은 영업 명목이라 처분이 불가하니…
현금화할 수 있는 건 결국 사택뿐입니다.”

■ 또또의 반응, 엉뚱함의 정점

그 말을 들은 또또는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뜬금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집… 제가 살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결혼할 사람이 있어서… 집이 좀 있어야 해서요.”

회의실 안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법인카드로 아이스크림을 긋던 사람이, 이제는 사택 매입 의사를 운운한다니.

그래도 회사는 어쩔 수 없었다.
사택을 팔고, 대출 3억이라도 갚고, 억지로 넘기고 비비고 버티면
올해 외감은 일단 피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진고동의 표정은 복잡했다.
깨끗한 회사를 자랑하던 사장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고,
대충 이렇게라도 흘러가면 다행이지—
그런 체념만이 남아 있었다.

■ 그리고 드러난 진짜 문제: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택 인수 절차에 들어가며 은행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또또의 대출 한도, 신용 점수, 기존 채무 여부까지 전부 확인해야 했다.

그 와중에 H가 작게 중얼거렸다.

“과연… 인수가 가능할까?
대출이 얼마나 나올지…. 쯧쯧.”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영업이사, 법카 생활, 사택에서 빈둥대는 남자가 어디 돈을 많이 쓰겠나 싶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대부계에서 온 전화는 예상 밖이었다.

“대출이… 예상 금액의 절반밖에 안 나옵니다.”

나는 되물었다.

“연봉도 적지 않은데 왜 그렇죠?”

은행 직원의 대답은 간단했고, 동시에 결정적이었다.

“기존 대출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사금융입니다.”

순간 머리가 맑아졌다.
또또가 왜 사택을 ‘사겠다’고 했는지,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는지,
도대체 어떤 게임을 하고 있었는지—
모든 게 기괴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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