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이의 사표
모두가 시끌했다.
그 한가운데서 나만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대출이 되니, 안 되니 사무실은 웅성거렸다. 사람들은 말하는 척하면서
힐끔힐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진고동 형님과는 하늘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무슨 사이냐고 농담처럼 물은 적이 있었다.
술을 마셔 얼큰하게 취해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아무도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그는 늘 자기를 ‘제2의 대표’라고 불렀다.
마치 이미 자리에 앉아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위치에 비해 능력이 한참 모자란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진고동 대표의 낙하산이라는 사실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사고를 치고 다녀도 문제 되는 일은 없었다.
늘 누군가가 그의 뒤를 정리해 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큰 기대는 없었다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회사에서
나름의 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면접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노란 염색 머리에 조금은 과한 옷차림.
긴장하면 나는 괜히 더 밝아진다.
“스트레스는 뭐로 풀어요?” “술로요.”
그 질문이 면접 질문인지 사적인 질문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웃음이 길어졌고 시간은 한 시간을 넘겼다.
며칠 뒤 연락이 왔다. 채용이라고 했다.
경력이 없다는 건 그때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기다렸다.
출근은 그 사람과 함께였다.
집이 가깝다는 이 유로 카풀을 하게 됐고
그건 생각보다 빠르게 일상이 되었다.
퇴근 30분 전 히터가 켜진 차.
그게 배려인지 의미인지 나는 구분하지 않으려 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를 이미 한 쌍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부인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나에게 아무 약속도 하지 않았고
나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게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는 불편해 보였고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러다 그 말이 왔다.
“이제 카풀은 못 해.”
이유는 없었다. 설명도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생각보다 멀었다. 그리고 늦었다. 지각이 잦아졌고
직원들이 물었다. “왜 카풀 안 해요?”
그 질문이 나를 회사에서 점점 작아지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알고 있었고 누군가는 모르는 척했다.
아침에 그와 나란히 커피를 뽑던 날들이 떠올랐다.
커플 티 같다는 말에 웃던 사람들.
법인카드였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모든 장면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사라졌다는 거였다.
나는 사표를 냈다.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붙잡는 사람도 설명해 달라는 사람도 없었다.
그게 이 회사의 방식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대출이 안 된다는 말이 사무실에 떠돌던 날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태연했다.
“알아서 되겠지.” 그 말이 외에 나의 언급은 없었다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이미 없는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잘린 것도 버려진 것도 아니다.
그저 필요 없어졌을 뿐이다.
히터가 켜지지 않은 차처럼 조용히.
그리고 아무도 그 사실을 문제 삼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