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언제 시작됐을까
입사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전 직원이 함께 해외 워크숍을 갔다.
그때 진고동 사장은
직원들과 함께 성공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은 그때만큼은 진심처럼 들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모습 또한 진고동 사장의 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조선소에서 나오는 고철로 사내근로복지재단을 설립해
회사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직원들이 복지를 누리게 하겠다고, 워크숍에 모인 직원들 앞에서 호언장담했다.
론사나에 대한 사랑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전형적인 사랑꾼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때의 그는 ‘함께 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진고동은 알까
아님 숨어 있던 자신의 본모습이 잘 감추웠던 것이
얼굴 뒤에서 세상밖을 향해 나온 걸 알까
회계감사와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로 회사가 시끄러워졌고, 그는 다시 한번 직원들과 워크숍을 왔다.
홍콩, 그리고 마닐라. 화려한 성공한 도시의 모습
꼭 론사나와 진고동의 모습처럼 보였다.
호텔 카지노에서 그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았다.
직원들과 함께 쓰기 위해 환전해 온 달러를 하룻저녁 만에 다 잃은 것 같았다.
새벽녘, 너털너털 호텔로 들어오는
진고동의 모습을 나는 호텔 발코니에서 보았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침묵했었나.
사람들은 침묵이 문제라는 걸 안다.
말하지 않아서 일이 커진다는 것도, 그때 한마디 했으면
달라졌을 거라는 것도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다시 침묵을 선택한다.
왜일까.
침묵이 가장 안전해 보이기 때문이다.
말을 하면 누군가는 불편해진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적어도 지금은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조직에서 위험은 대부분 ‘지금’ 발생한다.
불편한 사람, 어색한 공기, 괜히 찍히는 느낌.
반면 침묵의 대가는 늘 ‘나중’에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중의 위험보다
지금의 불편을 더 크게 느낀다.
그래서 지금의 평온을 택한다.
침묵이 합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 확실하지 않잖아.” “조금 더 지켜보자.”
“괜히 오해일 수도 있어.”
이 말들은 아주 이성적으로 들린다.
감정적이지 않고, 섣부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말들의 대부분은결정을 미루기 위한 문장이다.
문제를 없애는 말이 아니라 문제를 연기하는 말이다.
조직에서는 연기가 곧 구조가 된다.
미뤄진 판단은 언젠가 다른 사람의 부담이 된다.
침묵이 선하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참아라”,“굳이 말하지 마라”,“네가 이해해라”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그래서 침묵은
이기적이지 않은 선택처럼 느껴진다. 나만 조금 참으면 다들 편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에서의 침묵은 대부분 강한 사람을 더 편하게 하고, 약한 사람을 더 조용하게 만든다.
나는 그날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깨달았다.
침묵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선택이 아니라,
어떤 일이 벌어지도록 허용하는 선택이라는 걸.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가장 늦게,
가장 크게 돌아온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