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에 도달하지 않는 화살
부산에서 쭉 학교를 다녔던 나는 중3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서울 구경할 기회가 생겼다. 사촌 형의 집에 일주일간 머물며 혼자서 가보고 싶었던 서울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중 어느 날의 일이다. 종로 일대를 돌아보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기로 계획하고 있던 나는 세운상가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길에 낯익은 표지판을 봤다. ‘파고다공원’, 3.1 운동의 시작점이었던 곳, 잠깐 둘러보자는 생각에 공원에 들어갔다가 눈앞에 펼쳐진 첫 장면에서 난 얼어붙어 버렸다. 유채색이란 전혀 없는 칙칙한 회색이 진하고 덜 진한 정도의 옷을 입은 할아버지들이 빽빽이 앉거나 선 채 장기와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 폐건물에 들어섰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수많은 박쥐를 본 기분이랄까. 그들이 옷 색보다 더 무서운 것은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흐릿한 초점의 눈빛이었다. 나도 놀랐지만 그들에게도 나가 약간의 관심거리가 될 만도 한데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몇 명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조차도 단 몇 초만 보다가 이내 그 작은 관심조차 거두었다. 그렇다고 장기판을 바라보는 눈빛도 집중한 사람의 눈빛은 아니었다. 난 도망치듯 그곳을 나와 계획했던 교보문고에 갔고 다른 더 놀랍고 좋았던 첫 서울 유람의 기억 속에 묻혀 파고다공원의 일은 옷장 속 촌스러운 옷처럼 밖으로 소환될 일 없이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일이 있은 후 20년이 지난 어느 날 라디오 DJ의 멘트로 스치듯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들었다. 특히 1980년에서 2010년 사이 30년간 15년 정도 증가했다는 것이다. 순간 파고다공원의 할아버지들이 소환되었다. ‘그때 내가 본 사람의 절반 이상이 아직 살아있다는 이야기네.’ 기대수명이 60 초반이었던 80년 대 55~60세에 정년 퇴임한 사람들이 남은 몇 년을 편히 쉬다 가는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 그곳이었는데, 아직 살아있다면, 또 앞으로도 더 오래 산다면 20년 30년을 장기, 바둑으로 산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장수는 축복이 아니고 형벌이다. 그들은 정년퇴임을 경제적 사망으로 여기고 뇌사, 심장 사라는 의학적 사망을 기다리는,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눈빛은 이미 죽은 상태, ‘안사’ 상태, 사회적 시체 상태로 보내는데 종신형을 받은 복역자의 삶보다 크게 나아 보이지 않는다.
1970 1980 1990 2000 2010
전체 62.3 66.1 71.7 76.0 80.2
남자 58.7 61.9 67.5 72.3 76.8
여자 65.8 70.4 75.9 79.7 83.6
30년에 15년의 기대 수명의 증가는 제논의 화살 이야기와 닮아있다. 화살이 활시위를 출발해 절반을 간 시점이 있으면 남은 또 절반을 간 시점이 있고, 또 그 절반, 절반... 이렇게. 이 이야기는 보통은 궤변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정수로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던 피타고라스 학파의 오류를 드러낸 것으로 무리수의 발견 즉 실수의 세계로 인간의 사고를 확장시킨 논리이다. 기대수명이 30년 남은 사람이 30년을 살면 기대수명 15년이 증가하고, 15년을 살면 그 절반이 증가하고, 또 그 절반, 절반... 물론 이렇게 해도 기대 사망 시점은 추정이 되는 일이지만 죽음이라는 과녁이 점점 뒤로 밀려나면서 그것에 도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 60세에 대학 총장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잘 마무리했던 사람이 90이 넘어서 이런 글을 남겼다.
‘지금 내 인생을 돌이켜보니 내 삶에서 가장 긴 시간을 한 일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을 안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래서 언제 죽을지라도 지금 당장은 외국어와 검도를 새로 배우며 살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선진국들도 기대수명 연장의 속도를 감당하기 버거워하고 있는데 생물학 분야에서 게임 체인저가 나타났다고 한다. ‘노화는 필연적은 것이 아니고 치료 가능한 질병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식물의 경우 수백 살, 최장수 나무라고 하는 4천~5천 살로 추정되는 캘리포니아 강털소나무의 경우도 1~2년 된 어린 소나무와 생명 활동의 차이점이 없는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인데, 최근은 동물의 경우도 200살 이상으로 추정되는 북극고래와 500살 이상으로 예상되는 그린란드 상어가 발견되면서 동물도 식물과 같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수명을 예상 못 했던 벌거숭이 두더지나 해면동물의 경우 한계 수명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인간의 세포도 영생하고 있는 것이 있다. 1950년에 20대의 나이로 사망한 헬라라는 여성의 체세포는 7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의 연구실에서 처음과 같은 활력을 지닌 상태로 세포 배양되어 총질량은 2톤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개체가 아닌 세포 단계지만 이상적 환경 하에서 동물도 영생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증거가 된다.
Yogi Berra(요기 베라)
요기 베라(Yogi Berra)라는 미국 야구선수가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망 시점의 예측 가능성이 극히 낮은 상태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전의 생애 계획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는 다른 자세로 살아야 한다. 예상 사망 시점과 실제 사망과의 시간차가 10년 이상 크게 된다면 장수는 관리를 요하는 리스크다. 참고할 만한 좋은 사례도 있다.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는 70세가 될 때까지 식당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다가 위로 두 언니들이 치매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대로 죽는 것인가 하고 있었는데, 손녀의 도움을 받아 우연히 하게 된 유튜버 활동은 우리나라는 물론 유튜브의 본사 사장은 물론 구글 CEO까지 직접 할머니를 만나 세계인에게 영감을 준 할머니에게 감사를 표할 만큼 성공했다. 박막례 할머니에게 유튜버 이전 70년은, 일생의 대부분을 애벌레로 지내다가 화려하게 성충이 되는 매미의 그것을 연상케도 한다. 지금 할머니의 인생은 많은 이의 본보기가 된다. 요즘 ‘유튜브 탑골공원’이라는 신조어도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 내가 처음 가본 ‘파고다공원’과 지금 ‘탑골공원’이 전혀 다른 의미 듯 앞으로 우리 삶은 예상 밖을 일이 계속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