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
선택에는 비용이 든다. 그것도 많이. 일단 선택되지 않은 것은 기회비용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이것뿐만이 아니다. 대뇌가 선택을 위해서 경험 기억을 끌어다 오고, 가치 판단을 하고 논리적 사고를 하는데에 많은 생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것만큼이나 좋은 선택을 위해 생각하는 것도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관리자로서 자료를 살피고 그에 근거해 결정하는 일을 하루 종일 하고 나면, 운동이나 노동을 한 것보다 더 피곤하고 허기가 질 때가 있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 CPU도 연산을 할 때 전력소비가 크고 발열 양도 크다. 인간의 뇌는 이보다 훨씬 효율적이어서 발열은 없지만 큰 에너지를 쓴다. 남아있는 생체 에너지 양을 측정할 때 차가운 얼음물에 손을 담갔다가 차가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손을 꺼내는 실험이 있다. 이때 손을 물에 담그기 전에 어려운 선택을 많이 하고 난 사람은 차가움을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고 한다.
그렇다고 에너지만으로 사고를 시작하지 않는다. 생각하기보다 직관과 느낌에 더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대뇌의 능력을 발휘해 사고하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절박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용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과 거의 비슷한 유전자를 가진 유인원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전전두 피질의 기능이다. 다른 능력은 비슷하거나 그들이 더 우수해도 인간의 전전두 피질의 형태와 능력은 다른 종과 확연히 다르다. 이것이 부족한 운동 능력과 감각 능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지구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 능력을 자주 사용하면 중요한 순간에 사용할 에너지가 없을지도 모르기에 아껴두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보다 에너지가 적게 드는 '느낌'에 먼저 의존하려 하는 것이다. 앞서 예로 든 몬티홀 문제에서 앞에 있는 두 선택지만 생각해서 1/2이라는 직관을 맞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문제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선택을 유지하는 것과 바꾸는 것의 원리를 생각하기 시작하려면 큰 자극이 필요하다. 이것을 '절박함'이라고 하자.
고대 인류와 현대 인류 중 '어느 편이 더 행복할까'라는 질문에 의견이 갈리겠으나, 최소한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중요한 순간을 살면서 얼마나 자주 마주할까'라는 질문에 현대 인류가 훨씬 드물 것이라고 답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던 원시시대의 인류와 문명국의 평범한 시민과 비교한다면 말이다. 이동이 가능한 모든 동물은 뇌를 이런 순간에 최대로 가동하여 사용하고 있다. 동물은 낯선 대상을 만나면 모든 움직임을 정지하고 얼어붙는다. 상황 파악에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 중요도가 낮은 움직임을 정지하는 것이다. 자동차 시동을 걸 때 에어컨, 오디오 기기 및 조명 등 차의 부가 기능을 정지하거나 약화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얼어붙은 상태에서 접근하여 투쟁할 것인지 회피하여 도망갈 것인지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택한다. 결정되면 그때서야 얼어붙은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다음부터는 본능과 느낌이다.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또는 어디로 얼마나 빨리 도망갈 것인가는 대뇌가 개입하지 않는 편이 낫다. 에너지를 운동기관에 보내야 하고 최대한 빠른 결정을 해야 할 이때 대뇌가 끼어들면 방해가 된다. 에너지도 나눠 써야 하고 시간도 지체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만큼 생사를 가를 순간이 아닐 때도 이 능력을 꺼내 쓰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