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허물기로 했다. 모든 기록 모두가 나니까.
종종 있던 하루였다.
조수석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아빠의 출근길에 따라가는 건.
대도시가 아니기에 가는 길을 따라 펼쳐지는 강과 눈 앞의 초록들.
아름다운 풍경들에 놀랐지만, 내색 않고 담담히 즐기면서.
오고 가는 말들 속에 라디오의 신청곡은 금세 묻혀버리고, 대신 대화의 배경음악이 되어주는 딱 그 정도로.
반주가 되어주었지, 음악 자체로서 다가온 적이 크게 없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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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언젠가 쇠퇴하려나. 휴대폰을 열어 화면을 넘기면 각종 도파민이 난무하는 시대인데.
이제 우리는 입맛에 맞게 플레이리스트나 팟캐스트를 골라 듣는데, 시간에 맞춰 알람처럼 들려오는 라디오는 너무 뻔하잖아.
다만… 우리 부모님 세대나 장거리 속 심심해서 트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생각은 자유기에, 나는 라디오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별 생각도 없고.
얕은 관심 속 딱 이 정도의 흐름.
서울에서 잠시 본가로 내려올 때면 내 곁에 라디오를 트는 사람은 아빠 밖에 없으니까,
아빠가 나를 역으로 태워주는 그 5분 남짓의 시간에 가끔, 가끔씩 드는 생각이었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것들이 마음속에 훅 들어오는 순간들이 있다.
겹겹이 쌓인 마음의 한 절반은 그냥 파고들어 올 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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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 루틴 중 하루였다.
함께 차를 타고 아빠의 목적지에 도착하면 나는 그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작업을 하는 루틴.
아침으로 챙겨 온 바나나를 먹으며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구간을 지나갈 때쯤 들려오는,
아는 멜로디지만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신청곡.
휴대폰으로 들었다면 1초 만에 넘겼겠지만, 이렇게 차 안에서 들으니 내게 꼭 필요한 것 같은 노래.
기회와 선택의 기로 속에서 무얼 택해야 할지 불안하고 고민하느라 지친 나를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는 새 단단히 움켜쥐고 있는 주먹 같던 마음을, 서서히 펴게 만드는 멜로디.
익숙하지만, 한 번도 끝까지 들어본 적 없는 그 노래 속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노래가 온전히 노래로서 들려오고, 나는 제목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이소라-TRACK 3.
우리는 다음 신청곡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떤 하루가 될지도 모른다.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는 이 불확실성 속에 그저, 우리가 당장 향해야 할 길만을 알 뿐이다.
‘라디오는 언젠가 쇠퇴하지 않을까? 너무 뻔하잖아.‘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거다.
당신들의 덤덤한 세월의 습관 속에서 나는 새로운 진리들을 깨닫고는 한다.
아빠가 틀어준 라디오 덕분에 조용히 위로받는 하루.
‘뻔하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한 결 같다.
새로워 한동안 매료되지만 그것에 그치는 사람과,
뻔할지언정 한 결 같기에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후자가 되고 싶은 사람.
아빠의 출근길에 함께 하며 만난 모든 것들은
노래 가사처럼,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그리고 언제나 그곳에서 사랑을.
당연한 게 당연한 게 아닌 것처럼. 늘 한 결 같이 곁에 있어주는 모든 것들을 나도 더 사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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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를 특정하고 써내려 가다 보면 진심이 휘발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쓰는 글에 대한 경계를 허물기로 했다.
누구든 와서 보고 갈 수 있고, 함께 소통할 수 있지만 이곳은 내가 쓴 글이 담기는 공간이니까.
더 나다워 지기로 했다.
먼지 덮인 책장 속 잊히는 기록이 되기엔 오늘 같은 감사함은 너무 아름다운 감정이잖아.
용기 낸 김에, 더 용기 내보기로 했다.
순간을 보내고 훗날 후회가 되지 않게,
좋으면 좋았다고, 울컥하면 울컥했다고.
나를 드러내면서.
또한, 오늘 같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