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해성사
1. 진정한 페이지터너
나도 최근 알게 된 단어인데, 앉은자리에서 다 읽게 될 만큼의 몰입력을 가진 책을 page turner라고 한단다. 책 좀 읽어 보이는 것 같은 표현인데 마침 이 표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찾았으니 우연이 주는 쾌감이다. 각설하고. 우선 이 책은 진심 '재미'가 있다. 스릴러가 아닌데도 너무 재미가 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 나에게 재밌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첫 번째, 결국 그래서 누굴 선택하는 거야? 두 번째, 중간쯤 절대 멈출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 워낙 유명한 책인 만큼 물론 이외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책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재미가 주는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시작하고 싶지만 이 책이 가진 명성에 어깨가 무겁다면, 그냥 넷플릭스 시리즈 하나 본다고 생각하고 열어도 좋다. 물론 낮쯤 시작해야 한다. 밤에 시작하면 새벽까지 끊을 수 없기 때문에!
2. 나와 똑같은 쌍둥이가 있다면
나랑 똑같은 쌍둥이가 있는데, 나와는 성격부터 사는 생활까지 전부 다르다고 생각해 보면 어떤 감정이 들까. 우선 '싫다'이다. 자고로 한날한시에 엄마에게 똑같은 양분을 먹고 같이 출발했으면 같이 손잡고 결승선을 도달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근데 또 내가 내 쌍둥이를 미워만 할 수 있을까? 한날한시 엄마한테 똑같은 양분을 먹으려고 열두 달을 같이 자란 사이인데. 참 짜증 난다. 진짜 싫은데 싫어할 수 없는 존재. 굳이 쌍둥이어야만 할까. 형제자매부터, 어쩌면 친구에게도 들 수 있는 감정인거늘. 이 마음 구석에 더럽게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는 자격지심을 똑똑히 집요하게 바라볼 수 있다. 이 인물들과 함께 타는 감정의 줄다리기가 상당히 재미있는 편이다.
3. 나와 너무 닮은 사람
최근에 연애남매라는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봤다. 용우라는 출연자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너무 나와 닮은 사람이라서 머뭇거리게 될 때가 있다고 한다. 지원이라는 출연자도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원했던 사람이 아닌,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연애프로그램만 주구장창 보는 나에게 시간도 많다며 핀잔할 수 있지만 나는 과된 관찰을 통해 삶과 사랑을 배우는 것 같다. 사랑 앞에서 한 없이 약해지는 사람과 한 없이 강해지는 사람이 있다. 힘든 티도 잘 못 내는 누군가가 연인에게는 따뜻한 품을 내어달라며 울고 있을 수도 있고, 무척이나 부서지기 쉬운 사람이지만 이것을 숨기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되돌아보게 된다. 사랑에 대한 고민까지 담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겐 두 명의 이모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지금도 자주 만나서 나름 우정이 두터운 편이다. 우정이라고 표한 데는 이유가 있다. 나에게 이모는 친구이다. 그 말인즉슨, 엄마는 나에게 엄마인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투정과 약함을 가르쳤지만 엄마에게 나는 딸인지라 쉽사리 배운 것을 보여줄 수 없다. 하지만 조카인 나에게 이모는 어렸을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 같아서 지나가는 투정정도는 할 수 있는 정도이다. 진진이에게 이모는 엄마이길 바랐던 존재였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그 이모를 진짜 엄마로 만들어내는 것엔 비록 실패했으나 숨구멍 하나로 사는 삶 속에서 이모의 명랑함은 나갈 수 없는 탈출구였을 것이니. 진진에게 이모의 죽음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뿐만 아닌 기대어온 다른 엄마의 소실. 진진의 이모가 자살편지를 진진에게 보내고 난 후, 너무 놀라 토끼눈을 뜬 채 편지를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동시에 우리 이모들의 얼굴을 명확히 떠올렸다. 울지 않을 수가 없는 대목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방어기제는 특히나 가족, 친구에게로 통한다. 강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것처럼 쉽사리 티 내기가 어렵다.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가진 우울선이 닿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일까. 그런 나에게 연인은 특별한 존재였다. 울고 싶으면 울어.라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유일하게 찾아갈 수 있는 고해성사지 같은 곳. 그 사람에게는 우울선이 전달되어도 된다고 믿었던 거라면 이기적이겠지만 그 마음이 그렇게 독하고 가볍지만은 않았다고 믿는다. 이 마음에 대해선 탐구가 더욱 필요하다. 왜 나약함이란 특정 사람에게만 보이는 감정인 지. 진진이의 선택에 많은 공감이 갔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나는 솔직한 걸까?
이 책을 읽고 나서 '인생의 부피'라는 것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내 부피는 얇지 않다는 것이 나에게 큰 위로이다. 나를 위로하고, 이겨내고, 뛰어가기 위해 건넸던 많은 밤들의 말들이 굳은살이 되었다. 인생을 쉽게만 잘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인생을 돌고 돌아 쉽지만은 않게 살아온 사람들의 부피는 다르다. 그 부피가 줄 수 있는 위로가 너무나 뜨겁고 사랑스럽다.
나를 한없이 무너트리는 연인 vs. 나를 한없이 강해지게 만드는 연인. 어떤 사랑을 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