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당신
보통 그런 친구들 있지 않나? 연애/사랑을 책으로 공부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 연애 상담 채널을 너무 습득한 나머지 연애 경험이 없어도 모든 주변사람들의 연애 상담 담당이 되고 본인은 모솔이거나 거의 연애 경험이 없는 그런 친구, 바로 나였다.
어깨너머 들은 얘기는 많아서 남자는 그렇다더라, 남자친구가 그래서 이런 기분으로 그런 말을 했을 거다 등등 지금 생각하면 좋지 않은 조언들을 실제로 겪어보지 않아 모르니 스스럼없이 했다.
내 생각을 스스럼없이 얘기하면서도 내 연애세포가 살아있는지 고민이었다. 모든 주변 사람들이 연애 혹은 결혼 준비 중인 시기가 있었다. 주변이 모두 사랑 중이라면 호기심에 연애사업에 집중하려 노력해 볼 법도 한데, 누구를 만나고 싶다는 욕구, 호기심, 관심 같은 게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을 만났다.
폴로셔츠에 면바지 디폴트 옷차림의 다정다감, 스마트한 교회오빠와 실험실 밖에 나오지 않아 창백하고 안경 밑으로 다크서클이 짙은 Nerd 사이 그 쯤 어딘가 딱 그런 이미지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당시 그는 정말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고, 그런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의 친구가 바로 나였다. (만나도 다른 여자 얘기만 하는 이 영양가 없는 친구사이를 왜 유지했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그래도 만나면 그가 좋았다.)
무슨 용기에서인지, 어느 날 그와 밥을 먹던 도중 폭탄발언을 했다.
"그 친구랑 잘 안되면 나랑 데이트하기다?"
"그래, 좋아"
그리고 원하던 데로(?) 그가 좋아하던 여자와 잘 안되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생각보다 오래 괴로워하는 바람에, 내가 기다렸던 대로 '아싸~ 나랑 데이트!'라고 선뜻 묻기가 애매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고 운명의 장난인지 해외 출장이 잦아져 그를 만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에게 들었지만 잦은 출장이 그가 나를 끊임없이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브런치 작가가 승인되고 나서 제일 남기고 싶었던 기록,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연애했을 때 나는 어떤 기분과 생각이었을 까 궁금했다.
책꽂이 어딘가 숨겨져 있던 예전에 쓴 일기를 발견했다.
이미 첫 장부터 하트 스티커가 붙어있다.
아마 이 시기의 나는 다 핑크빛이었을까?
일기장 내용 하나하나 지질함과 어리석음.. 미성숙함(immaturity)이 묻어난다.
"순수하다" "사랑, 그 하나에 올인(all-in)한 사람이다"라고 긍정적으로 동그랗게 이렇게 저렇게 포장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나는 정말 너무 구차하고 소심하고 그렇지만 더욱 사랑받고 싶어 그의 관심을 갈구하고 또 갈구하던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너무 오글거리게도 지금보다도 더 두꺼운 콩깍지가 씌워져(?) 정말 그 외에는 아무도 못 보던 사람이었구나 나의 일기 속의 그는 나만의 공유였으며, 나만의 현빈이었으며 또 어떤 날은 섹시한 조지 클루니, 어떤 날은 브릿짓 존스의 다이어리에 나오는 로맨틱함으로 흠뻑 샤워한 나만의 콜린 퍼스였다.
'흠.... 심각했구먼...'
물론 콩깍지가 조금은 벗어지며 그가 더 이상 사랑스럽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과거의 내가 묘사한 그는 정말.. 뭐랄까 약 300%는 과장된 그런 모습인 듯했다.
우리의 뜨겁진 않지만 아기들 분유 온도처럼 약 40-45도씨의 (이제 막 신생아들 육아 중이라 머릿속에 모든 것이 아기들 기준인 듯하다 ㅋ) 뜨뜻미지근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