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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게 나무였다.

나는 마당의 큰 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히곤 했다.

by 유진




내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무의식의 내가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마치 세포 속 유전자가 존재하듯이 그렇게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의식으로 끌어올려 마주 보게 된 건 20살이 지난 어느 지점이었다.



하루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문득 어떤 그림이 그려졌다. 그 그림은 순식간에 윤곽이 드러나고 색이 입혀졌다. 지금도 생각이 나냐고? 당연하다. 머리 안에서 그려진 선명한 그림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니까.. 그건 너무도 선명한 내 마음이었기 때문에 잊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커다란 나무를 생각했고 그 나무는 끝이 없는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 그림을 그렸을까? 그냥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을 뿐인데 말이다.



사실 그건 내 마음이었다. 사람들에게 그런 쉼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나이대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난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 '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너무 막연했다. 이제 20살 초반이 된 대학생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우습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연상이 되었는데 진짜 내 울타리가 되어준 나의 아버지다. 내가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림은 그런 커다란 나무다. 여러 명이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땀을 식힐 수 있는 그런 나무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무는 그 자리에 늘 있을 것 같은 믿음이다. 내게 나무는 믿음이다. 그리고 안전함이다.

가족에게 언제나 든든한 담벼락이 되고 지붕이 되고 그늘이 되어준 존재가 내겐 아버지이다. 얼마 전 그런 존재에 흔들림이 있음을 알았다. 나에게 있어 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뿌리로 어떤 바람에도 뽑히지 않을 강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믿음이 흔들렸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길을 잃은 존재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겉보기엔 괜찮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나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고요한 시간 모두가 잠이 들면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의 뿌리는 약해졌고 그걸 받아들여야 했다. 언제까지나 그늘을 만들어 줄 것 같았던 나무는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을 뿐...



나는 이제 그 나무 옆에서 삐죽이 솟은 막대기가 되려 한다. 나무가 기우뚱하면 보잘것없지만 조금이나마 기댈 수 있도록 몸에 힘을 주고 버틸 것이다. 땀이 나겠지 숨이 차겠지 그래도 평생 흔들리지 않고 버텨준 나무가 고마워서 나는 버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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