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 숨어있는 투덜이 이야기.
나는
투덜이였다.
늘 조금씩 불만이 있었다.
나는 이러니까 이런 거야..
나는 이래서 이런 거야..
나는 이렇지 뭐..
그래
나는 투덜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내 입이 자꾸만
투덜거려서
내가 진짜 투덜이가 된 거란 걸...
그런데 어쩌지..
입을 다물었더니
생각이 투덜거린다
그런데 어쩌지..
생각을 하지 않으려니
다리가 덜덜거린다.
눈물이 났다.
투덜거리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울고 있는 나에게
감사가 다가왔다.
안녕?
난 감사야
응..
난 투덜이야..
왜 울어?
응..
투덜투덜..
나를 가만히 보던 감사가
조용히 내게 다가왔다.
감사는
나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그러자 다리도 떨지 않고
생각도 나지 않고
입도 투덜거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감사가
고마웠다.
나는 언제나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다. 무엇을 하든 간에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 반드시 될 거라는 믿음 따위는 내게 없었다.
내 기억에 우울증이 시작된 건 17살이었다. 그 전과 후가 너무 달라서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이니까. 17살 전의 나는 아주 긍정적인 아주 해맑은 아이였다. 하지만 17살이 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청소년이었다. 하지만 그 어둠을 들킨 적은 없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건 내가 예쁜 불행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 껍데기는 예쁘기만 했고 알맹이만 아팠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도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넌지시 나를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고 나는 더 깊은 곳에 들어가 필요할 때만 잠시 나오는 그런 생활을 했었다. 들락날락하며 어둠을 들키지 않았을 뿐이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알지 못했고 마음의 어둠이 몸으로 드러나서 병원만 들락거렸다.
내가 간 병원에서는 하나같이 같은 소리만 해댔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다 괜찮아진다나? 뭐가 괜찮아진다는 건지……. 그놈의 신경성이란 소리는 들을 때마다 짜증이 났었다.
내가 그때 깽판을 쳤어야 했다. 내가 지금 이렇다고 바닥에 드러누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나는 방황하는 20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자존감이 떨어진 무기력한 30대를 보내진 않았을 거다. 뭐가 되었든 간에 미친 듯이 소리를 쳤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겠지….
착한 아이가 뭐라고 그게 뭐라고 예쁘게 슬펐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내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삶을 일구어내셨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누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셨다. 모든 건 자식을 위해서였다. 어린 나의 눈에도 그런 의지가 보였으니까. 그래서 말을 못 했다. 그분들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집에서만큼은 편안하시길 바랬다. 고된 일터에서 쉼터에 오셨을 때 마음까지 무겁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죄를 짓는 기분이었거든……. 그래서 슬플 때 더 예쁘게 웃었다. 혼자 있을 땐 웃을 일이 없었고 그냥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을 뿐이다. 빨리빨리 지나가 버려서 내 마음도 그냥 흘러가 버리길 바랬다. 그런데 그건 내 망상이었나 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도 흘러가지 않고 머물러버렸으니까….
어느 날이었다. 피곤해서 쉬다가 그대로 잠이 든 거 같은데 멍한 상태로 눈을 뜨자마자 미친 듯이 눈물이 났던 적이 있다. 그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가슴에 있는 뜨거운 덩어리를 뱉어내는 듯한 울음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가 지끈거려서 애를 먹었었지….
그랬다. 내 20대는 그렇게 흘러갔다. 내 30대도 별반 다르진 않았는데 20대보다 더 무기력했다는 건 조금 다른 점이다.
나는 시간을 돌려서 17살의 나를 들여다봤다. 왜 그랬을까? 매점에 빵 사러 뛰어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신났던 내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건 꿈꾸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7살이 된 나는 꿈꾸는 걸 멈췄거든…. 꿈 많던 아이가 꿈꾸는 걸 멈춰버리니 견디지 못하고 아팠던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허황하고 말도 안 되는 헛된 꿈들 뿐이었다. 적어도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나는 꿈을 꿔봤자 날지 못할 걸 알게 되었고 어차피 날 수도 없는 나란 존재가 하찮게 느껴졌던 것이다. 나 자신이 나를 하찮게 보기 시작했고 그 뒤로 나는 어떤 것도 해낼 수 없는 인간이란 믿음을 내게 심어버렸다. 내가 그랬는지도 모르게 의식하지도 못한 내가 그렇게 해버린 것이다. 무엇을 하려 하든 어떤 것을 시도하든 간에 이 확고한 믿음이 나를 끝도 없이 끌어내다. 그 사실을 세월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난독증에 가까울 만큼 책 읽기를 힘들어했던 내가 미친 듯이 책을 읽던 어느 날 깨닫게 된 건 ‘나는 나에게 실망했었구나.’였다. 그러자 마음이 좀 놓아졌다. 알게 되니 그렇게 되더라. 그리고 나니 열일곱의 서툴고 어리석었던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다른 꿈을 꿀 수도 있다는 걸 잠시 멈췄다가 다시 꿀 수도 있는 게 꿈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면 나 자신을 그렇게 하찮게 여기진 않았겠지. 실망이 너무 커서 어리석게도 내 나이 20대의 삶까지 그리고 30대의 삶까지 멈춘 채로 살진 않았을 것이다.
투덜투덜 투덜투덜 끝이 없을 투덜투덜…. 나를 비난하는 나의 목소리를 부드럽게 안아준 건 감사였다. 나는 자기 계발 서적을 죽기 살기로 봤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투덜이들을 떨쳐내지 못하면 평생 그렇게 살 거라는 두려움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무슨 책인지 제목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닥치는 대로 좋다고 하는 건 다 읽은 모양이다.
두려움은 내 마음을 움직였고 포기하지 못하게 했다. 악착같이 매달렸다. 내 머리가 뻥 하고 뚫려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고백하자면 나는 ADHD가 있다. 그것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왜 학창 시절에 학교생활을 유난히 힘들어했었는지 의문이 풀리던 순간이었다.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남들에게 사소한 일과가 왜 내게는 1부터 10까지 메모해야 하는 일과인 건지 남들에겐 별거 없는 간단한 일거리도 내게는 매번 최대한 집중해야 하는 과제인 건지 알게 되었다. 간단한 일과를 끝내고 완전히 지쳐버려서 퍼져버릴 때마다 나는 왜 이런 일에 이 정도로 지칠까 하고 답답했었다. 티브이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어떤 여자 연예인에게 조심스럽게 ADHD라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그녀도 집중력이 짧고 잠깐의 집중으로도 뇌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린 거 같이 기력이 빠진다고 했었다. 정말 나와 똑같은 증상이었다. 아직도 간단한 요리를 할 때 매번 봤던 레시피를 꺼내야 한다.
이런 사소한 불편함들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초보운전자도 아닌데도 내가 사는 지역에서조차 길을 헤맨다. 오랜만에 지나게 되는 길은 어김없이 허둥거린다. 내 아이는 엄마의 그런 모습에 익숙해져서 이젠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다. 나는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나의 뇌를 풀가동시키기 때문에 다음날이면 몸살이 나버리기도 한다. 내가 겪는 일상은 늘 이렇다. 이런 어려움과 불편함은 언제나 있던 일이다. 편두통은 나의 오랜 벗이 되었고 메모지와 연필은 내 가방의 필수품이다.
독서는 내가 넘지 못할 높은 암벽이었는데 내가 살기 위해 매달렸더니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줬다. 나를 이해하게 만들었고 감사를 알게 만들었다. 감사가 내 마음에 들어온 날을 잊을 수 없다. 그 경험은 신비하기까지 했다. 내 머리 안에 내 마음 안에 구겨진 많은 것들을 부드럽게 문질러서 반듯하게 펴주는 기분이었다. 따뜻했다. 뜨겁기까지 했었다.
감사는 보이지 않는 팔로 나를 힘껏 안아주었고 나는 매달려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알게 됨에 정말 고마웠고 알게 됨에 너무 행복했다. 이제 투덜이는 내가 달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불쑥불쑥 튀어나와 신경질을 내지만 감사가 다가와 부드럽게 만져주면 비비적거리며 구겨진 얼굴을 편다. 그럴 때면 나는 작게 안도하며 다시 감사에게 고맙다고 인사한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감사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