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원

내 손바닥 위 50원

by 유진




호호

입김 불면

구름같이 흩어지던 날


손에 꼭 쥔

50원

소중히 안고


소중한 내 동생

손도 꼭 잡고


킁킁

냄새 따라

비장한 내 표정


저기

반만요


조마조마한 내 손위의

50원







아주 추웠던 겨울이었어요. 그때 저에겐 딱 50원뿐이었죠. 그 당시에 맛난 붕어빵은 한 개 100원이었는데 저에겐 50원뿐이었답니다. 하지만 전 씩씩한 누나라고요. 동생 손을 꼭 잡고 붕어빵 가게 앞에 서서 목에 힘을 주고 섰죠.


아줌마! 저 50원어치만 주세요!



그때 아주머니의 표정은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전 제 동생에게 그 붕어빵을 꼭 먹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랫배에 힘을 주고 눈에도 힘을 줬죠. 잠시 저를 보던 아주머니는 붕어빵 한 개를 줬어요. 저는 당당하게 제 동생에게 붕어빵을 쥐여주었답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눈싸움에서 이겼다.'

기죽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기죽으면 붕어빵을 못 살 것 같았거든요. 동생 손을 잡고 돌아오던 길이 어찌나 뿌듯했던지 생생히 기억난답니다.






그 시절엔 그랬어요. 돈이 귀했고 우리 집도 돈이 귀했거든요. 부모님은 고생하셨고 우리 남매도 다른 집들처럼 둘이서 꼭 붙어서 밖으로 돌아다니며 놀 던 시절이었죠. 아침 먹고 나가서 놀고 점심 먹고 나가서 놀고 실컷 놀다가 노을이 지면 엄마가 저녁 먹으라며 데리러 오셨죠. 그렇게 비타민D를 넘치게 흡수하며 온 동네를 발발거리고 다녔답니다. 배고프면 집으로 들어가서 엄마를 졸라 간식을 먹고 다시 뛰어나가 놀던 아이가 바로 저였죠. 동생은 그 당시에 누나 껌딱지여서 제 손을 잡고 짝꿍처럼 늘 따라다녔어요. 자전거도 제가 직접 가르친 아이라고요. 어릴 땐 꽤나 귀엽게 생각했던 동생이었어요. 생각해보면 고작 2살 차이인데도 저는 늘 아기 대하듯 했어요.


그 해 겨울도 옛날 겨울이 그랬듯이 엄청 추웠어요. 지금의 겨울은 비빌 것도 못되죠. 그런 추위에 우리 남매는 붕어빵을 먹겠다는 일념 하에 붕어빵집을 향해 나름 씩씩하게 걸어갔었죠. 하지만 제 마음은 걸음걸이만큼 씩씩하지 못했어요. 제 손에는 50원이 전부였기 때문에 혹시나 아줌마가 안된다고 할까 봐 가는 내내 불안했던 기억이 나요. 동생에게는 누나라고 큰소리 떵떵 쳤는데 아주머니가 안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속으로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사실 제가 그렇게 자신이 없었던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상대로 쥐포 같은 거를 구워서 팔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게 50원이었거든요. 하루는 제가 갖고 있던 돈이 40원뿐이어서 그냥 돌아갔었지만 너무 먹고 싶은 마음에 다시 돌아와 40원어치만 줄 수 있냐고 물어봤었죠. 결과적으론 매몰차게 거절당했답니다. 그래서 붕어빵도 실패할까 봐 두려웠던 거죠.


붕어빵 가게 앞에 서서 잠시 할 말을 생각했던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동생 손을 꼭 잡은 제 손에도 땀이 났었죠. 딱 하나만 사서 둘이 나눠먹고 싶었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포기할 순 없었답니다.

용기를 내서 얘기를 했는데 착한 아주머니는 제 마음을 들여다보셨는지 아주 뚱뚱한 붕어빵을 주셨어요.

그 아주머니의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따스한 느낌은 기억이 나요. 뜨거운 붕어빵을 반으로 쪼개서 동생이랑 나눠먹고 아쉬운 마음에 붕어빵 가게를 다시 돌아봤던 어린 날의 기억입니다. 저에겐 따스하고 아쉬운 하루였죠.


가끔 붕어빵 장수를 보면 옛날 그 아주머니가 생각나요. 빨간 코를 하고 동생 손을 꼭 잡고서 맹랑하게 외치던 그 아이를 아주머니는 기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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