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의 감정에 공명하는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감정 상태가 좋지 않은 상대와 대화를 할 때..
내 감정에 버블을 씌우는 것처럼 상상하며 그 자리에 있으려 한다.
상대의 신체 상태까지 흡수하는 경우가 있어서나 자신도 내가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친정에 갔다 오기만 하면 그렇게 몸이 아팠던 것도 그래서 그렇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사실 느낌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이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줄은 몰랐을 뿐이다.
심증만 있고 물증을 없는 딱 그 상태였다는 거....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나만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과묵한 편이시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처리하는 성향이 강하신 분이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불편한 감정에 대해 가족에게 얘기하고 그러시진 않는다.
전화벨이 울리고 이름이 떴을 때 ..
저 전화는 받으면 안 될 거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김없다. 불편한 감정이 잔뜩 고조되어 있는 상태의 상대가 나와 대화를 하길 원한다.
대부분은 엄마와 남동생이다.
나와 대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후련해진 듯이 기분이 나아진 듯이 마지막 대화의 목소리는...
무척 가볍게 들린다.
하지만 난 그 전화를 끊고 나면 그때부터 괴로워진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신체적 반응도 따라온다.
내가 집중을 해야 하거나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린 상태에서 동생의 불편한 전화를 받고 나면
그날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동생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전화를 끊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그때부터 그 기운을 정화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써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이런 상황이 늘 반복되어왔었다. 그래서 그런 전화가 오면 일부러 피하기도 했었다.
왜 전화를 안 받냐며 화를 내는 동생 놈을 보며 속으로만 생각하지 말하진 못했다.
' 니놈 상태가 그 정도이니 내가 피한 거다 이놈아....니가 기분 좋을 때 보다 나쁠 때 나를 찾잖아!!! '
자기 고민 해결하려고 전화 거는 게 10번 중 8번은 되는 녀석...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누나한테 전화하면 자신의 기분이 나아진다는걸...
자신의 고민도 가벼워지고..
최근에 부모님 집에 갔다가................
아무 생각 없이 아이와 함께 쉬다가 무릎이 절뚝거릴 정도로 아팠다.
ㅡ,,ㅡ 어 이거 왜 이러지.... 다리가 힘이 없고 무릎이 왜 이러지...
엄마가 다리가 아파서 주사를 맞으셨다..........................ㅡㅛㅡ''''' 진정 개복치의 삶인가...
내가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만큼 느끼나 보다..
나 같은 경우는 더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타인보다 더 그런 거 같다.
엄마가 다리가 아프다는 말을 들었을 뿐인데 같은 자리가 아팠다...
어느 쪽인지 듣지 못했지만 같은 자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는 이유다.. ㅜ,,ㅜ 의도적 방구석 집콕이다.
그게 내가 살길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거다.
기가 빨리는 느낌을 평생을 느끼고 살다 보니 혼자 있어야 편하다는 걸 아는 것이다.
작년엔 카센터에 갔다가 나에겐 의도적으로 친절하던 사장님이 나이 지긋한 어르신을 볼 때
그 눈빛에서 사람 같지 않은 살기를 느끼고 온몸이 그 자리에서 얼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그 카센터는 다시는 가지 않는다.
그건 사람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공포였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무서운 느낌을 가진 사람과는 다시는 만나지 않는 게 낫다....... ㅡ,, ㅡ
진짜 살다가 그 정도의 느낌을 준 사람은 태어나 처음이라 지금 다시 생각해도 무서운 사람이었다.
찰나의 순간 스치고 감추는 눈빛에서 진심을 느껴버린다면..........
사는 게 어떨지 상상이 가는가?
내가 그렇다 ㅜ,,ㅜ 난 조금 섬세한 사람은 다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이 성향을 다스리게 된 게 이 나이 먹어서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니 내 삶이 그렇게 마음적으로 고단했겠다 싶었다.
책을 읽고 또 읽고 하다 보니 내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된 것이고 그렇게 살다 보니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생소하게 들릴 것 같다.
대체 ' 엠패스가 뭐지? '....
나도 처음 들어 본 단어이다.
그런데 성향 테스트에서 무지막지하게 높은 수치가 나오는 걸 보고.......... 그동안의 내가...
다 이해가 되었다는 거...
아무것도 모르고 참 힘들게 살았다 나.....
내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자가 되고 싶었던 20대 초반...
이유 없이 그냥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예술치료, 미술치료 이런 걸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어떤 성향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남을 도우려다 내가 오히려 심각하게 아픈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잃어버린 긴 시간이 생겨버린 거고....
심리상담사나 치료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내가 엄청나게 힘들다는 걸 느끼게 되고는 포기했었다.
그때에는 내가 너무 원하던 걸 포기하게 돼서 내 삶이 아무짝에 쓸모도 없는 실패한 인생 같았다.
그저 나의 무능함에 좌절했던 시간이었다.
아이를 낳고 차원이 다른 사랑을 알게 되고 아이를 위해 책을 읽고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를 제대로 알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을 알고자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인데....
내가 엠패스라니..................
모든 게 명확해진다...
ㅡ,,ㅡ;;;;;;;
나는 단순히 체력만 약해서 그렇게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든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글을 써서 치유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어렸을 때 꿈꿨던 치료사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 방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었나 보다. 그래서 서툴고 투박해도 글을 쓰고 싶었나 보다.
나는 글 쓰는 구조에 대한 공부를 배운 것도 아니고 전문 지식이 있어서 칼럼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길 바랄 뿐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뿐이다.
나는 22살에 그런 삶을 꿈꿨고 24살엔 그게 가능할 줄 알았지만.......
25살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말이다.
어쩌면 가능할 것 같다.
처음엔 그냥 나를 썼고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내 마음을 썼다.
쓰다 보니 나아지고 계속 쓰다 보니 더 나아졌다.
그리고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을 다스리는 것도 점점 나아진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가능해지나 보다.
사람의 감정을 지나치게 흡수했던 과거의 나...
먼 거리에서도 느껴졌던 나를 원망했던 그 눈빛... 몇 초간의 눈빛이었지만 이미 다 느껴버린 복잡한 감정... 그런 일들이 일상에서 자주 일어난다면 삶이 참 그랬겠지?
상대는 아닌 척하고 나를 대했지만 난 이미 다 느껴버린 후...
혼자 돌아와 엉엉 울었던 기억...
그 마음을 회복하려 애쓰던 나...
아니야 그럴 수 있을 거야 나를 원망했을 수 있지 자기도 힘드니까 그랬겠지... 그럴 수 있어..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무디게 살고 싶었다.
그게 나를 보호해 주는 것 같아서....
그런데 의도적으로 무디게 산다는 건 나를 잃는 것과 같았다.
그건 내가 아니니까...
내가 그렇다면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이런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걸 하자...
어쩌면 이런 나는 더 좋은 쓰임이 있을 거야..
그래서 글을 쓴다. 더 좋은 쓰임이 되기 위해....
나중에 다시 생각했을 때...
' 난 좋은 쓰임이 되는 삶을 살았다.'라고 기억하고 싶다.
22살 꿈에서 봤던 나와 똑같은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을 인쇄해서 붙여놓고 본다.
나는 한 그루의 ' 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