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추고 싶은 나
보여주고 싶은 나
사고를 당하듯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모두에게 일어난 사고 같은 상황에 모두가 동굴로 들어간 시기가 있었다. 잔뜩 겁을 먹고 스스로 동굴에 들어가 동태를 살피곤 했다.
굴속에 들어간 토끼처럼 언제 사냥꾼에게 잡힐지 몰라 바들바들 떠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버렸었다. 나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아이의 식재료부터 얼른 사놓고 매일매일 전달되는 소식에 집중하며 집안에서조차 긴장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당시에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했을 것 같다. 불안은 모두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주변을 경계하게 만들었으며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생명이 없는 온라인 세상은 안전했다. 그 세상에서는 긴장할 필요도 없었고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외부의 긴장감을 잠시 잊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그 세상에 빠지게 되었고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는 선택들을 끊임없이 하게 되었다. 나는 내 삶의 방식을 바꿨고 지금도 계속 바꿔가고 있다. 그 시작은 뜻하지 않던 사고 같았던 그 일이 발생하면서 내 인생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어쩌면 내겐 긍정적인 변화였다. 나는 그동안의 막혀있던 사고방식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흡수하기 시작했으니까....
내게는 현실보다 더 편했고 현실보다 더 따뜻했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즐거웠고 얼굴을 모르니 말하기가 더 쉬웠다. 가장 친한 사람들에게도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는 다 털어놓게 되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슬픔과 고통을 보여주는 것이 나를 잘 아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더 편했고 그런 모든 시간은 나의 슬픔을 치유받는 시간이었다. 나는 지금도 나와 진심을 나눈 얼굴 모르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현실보다 더 따뜻했고 현실보다 더 깊은 공감을 나눴다.
나는 내 아픔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 내 슬픔을 나누지 않는다. 내 고통을 전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공감받는다는 느낌도 없었고 그런 시간이 오히려 내게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기대감과 서운함 가운데서 혼자 감정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은 그런 모든 기대를 마음에서 버렸다. 결국 삶이라는 건 스스로 삼키고 치유해야 하는 것임을 알았다. 내 슬픔을 내뱉지 않고 삼키고 그것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애썼다. 기대감을 버리니 그건 당연한 것이 되었다. 더 이상 서운하지 않았고 서운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내 삶은 내가 사는 거니까.....
나는 현실에서 감추는 것을 온라인 세상에선 보여줬다. 온라인에서의 나와 현실의 나는 그 간극이 꽤나 크다. 나는 온라인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하다. 그 안에서의 내 삶은 현실보다 자유롭기 때문이다. 현실의 나는 자유롭지 않지만 온라인 속의 나는 자유롭다.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온라인에서는 하고 있다. 나는 이 속에서 여러 가지의 페르소나를 만들었다. 현실과의 간극 때문에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간극이 좁혀지고 있다. 처음엔 너무나 멀었지만 온라인 세상에서 내가 느끼는 행복감이 현실에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슬픔과 고통을 잊으려 온라인 세상에 들어온 내가 온라인에서 행복을 찾고 치유받으며 내 꿈과 미래를 그리는 동안 현실의 나도 행복해지고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밤이 되면 조용히 흐르던 눈물도 어느 순간 흐르지 않게 되었고 진심으로 웃게 되었고 행복한 순간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숨어 들어간 온라인 세상에서 새로운 내가 되어 현실의 나를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행복하고 성장한 미래를 꿈꾸던 내가 현실의 나를 다독였다.
' 이건 꿈이 아니야. 나는 이 안에서 진짜 행복을 찾았고 눈을 떠도 그 행복이 나를 지켜줘... 이건 꿈이 아니야. 눈을 떠도 이젠 괜찮아. 예전만큼 아프지 않고 나는 단단해졌어.'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내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