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 중 9번은 거꾸로?
' 바쁘다 바빠 바쁘다 바빠..'
약속이 있는 날엔 시계를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는 나는 강박적으로 시계를 계속 보며 체크를 한다.
알람도 맞춰놓고 시간도 수시로 확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 맞다. 현관을 나서는 순간은 늘 빠듯하다.
마을버스를 후다닥 뛰어가 잡고 지하철역에 가는 길 역시 뛰어간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긴장은 멈출 수 없다.
왼쪽 오른쪽이 구분되어 있는 지하철역이 아니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게 아니라면 난 한 정거장을 가면서 오늘도.. 역시 아오~~!! 절규하며 내려서 계단을 타고 후다닥 뛰어서 반대편으로 날아야 하니까...
오늘은 맞게 탄 거 같아 그렇지??
응.... 응..?
어.... 억!!!! 왜? 분명 확인했는데 왜!!! 또!!
내 약속시간....
역시 늦었다.
친구의 얼굴.. " 또냐 이 시키야.."
'할 말이 없다 친구여.. '
그 당시엔 왜 그렇게 지하철을 거꾸로 타는지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탄다면 몰라도 나는 늘 긴장을 한다.
이쪽인가? 아니면 이쪽인가? ㅜㅜ 슬프게도 난 방향 감각조차 애처로운 수준이다.
운전면허증을 따고 나서는 경로이탈이 무슨 핸드폰 알람마냥 울렸으니 말 다했음..
집에서 나서기 전부터 이미 긴장한 상태로 '오늘은 꼭 정확하게 가야지!'라고 외쳤지만
결국 반대로 타고 나서야 멀어지는 승강장을 경악하며 바라보는 일상이다.
약속을 정하면 며칠 전부터 그날의 약속을 떠올리고 당일엔 알람을 여러 개 설정해 둔다.
나는 그렇게 여러 개의 안전장치를 해두지만 이상하게 꼬여가는 외출준비 상황이 발생한다.
하필 눈썹 정리를 하다 다친다.
이미 입을 옷을 챙겨놨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시간을 확인했지만 동태눈알인지 시간을 잘못 본다.
겨우 지하철까지 가서 지하철을 탔지만 역시나 거꾸로 탄다.
다시 한 정거장을 돌아와서 정상적인 방향을 향해 출발하면 이미 지각이다.
시간의 흐름이 남들과 다르게 느껴져 알람을 엄청나게 맞춰둔다.
그럼에도 오묘하게 자잘한 상황들은 늘 발생한다.
희한하게도 외출준비를 하기 전엔 피곤함이 몰려온다.
긴장한 탓에 그런 건지 외출 준비 자체가 버겁게 느껴진다.
심지어 졸음이 쏟아진 적도 있다.
정말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게 나를 방해하는 무언가의 방해공작 같기도 하다.
있다 있다 분명히 있다.
나의 일상이 아름답게 다 꼬여버리길 바라는 천하의 망나니가 존재한다.
이 망나니는 게으르고 불만이 많은 입이 댓발 튀어나온 말썽꾸러기다.
나는 내 안의 말썽꾸러기를 어떻게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저와 같이 이런 경험이 있으신 분이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유난히 길치에 공간 감각도 둔하고 방향 파악도 굉장히 느립니다.
머릿속에서 어떤 공간에 대한 평면도를 떠올렸을 때 바로 인지가 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지독한 길치입니다.
" 경로를 이탈했습니다."는 아이가 제 차에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친구와 함께 어렸을 때 일본에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전 친구를 바다의 등대처럼 믿고 의지했었어요. 지도 한 장으로 척척 찾아가는 친구는 너무 믿음직스러웠고 작은 디테일을 기억하는 저는 대신 친구의 사소한 부분들을 챙겨가며 여행을 했었거든요.
저는 전체를 한눈에 담아서 파악하는 능력치가 상당히 낮아요. 이 부분은 adhd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 저게 안 보여? " 하시겠지만.. 네 안보입니다. 눈뜬 봉사같이 안 보여요.
하지만 디테일엔 상당히 강하거든요. 아주 사소한 부분을 기억해요.
저는 결국 제 장점으로 이런 실수를 보완하기로 했어요.
자주 가는 지하철은 지하철의 방향과 함께 몇 번에 서서 대기하고 이동할지 모든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그림까지 그려서 노트에 적어두었죠. 저는 그 정도로 심했거든요.
아무리 속으로 생각하고 외우고 있어도 막상 도착해서는 방향이 생각이 안 나요.
덜렁거리다가 그것마저 잊기도 한다는 점..
그럴 땐 거꾸로 가는 거죠 뭐..
그래도 10번 중에 2~3번은 정상적으로 갔어요.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실수를 안 하지만 예전엔 굉장했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