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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l 30. 2024

조용한 adhd 에세이 4

글쎄.. 누구더라?




그런데 누구??

분명 아는 사람이다.

기억해야 한다.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던 나는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결과를 만들고야 말았다.






나는 유난히도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에게 있어 사람 얼굴은 그 형태가 그 자리에 보존되어 있음을 뜻한다.

자세한 모양은 내게 있어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흐릿한 몽타주같이 느껴질 뿐이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정말로 사람의 얼굴이 몽타주처럼 흐릿하게 기억난다.

분명한 형태와 그 사람의 느낌을 연결 짓지 못하면 나에게 있어 사람은 그냥 다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 내게 각인이 되거나 내가 의도적으로 기억하기 위해 분명한 형태와 그 사람의 느낌을 연결 지어놔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은 내게 각인이 되면 절대 잊지 못한다는 부분이다.

잊고 싶어도 달라붙은 껌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듯이 절대 잊어버려지지가 않는다.

내게 있어 기억이란 늘 이렇다. 

흐릿하거나 너무나 선명해서 모든 감각이 그날의 그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매번 그 순간으로 나를 되돌려 놓는 듯한 감각이다.



불행하다 느낀 기억이 매번 가슴을 찢어놨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단편영화 한 편을 다운받아 저장하고 있는 것과 같이 지독하게도 선명하다.

쓸데없는 사소한 한숨과 모든 시간과 모든 표정을 기억한다.

지독한 축복이다.



내 증상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 했을 때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다.

몸이 고단한 건 둘째치고 매일 수십 명을 기억해야 되는 상황이  결국 내 몸을 주저앉힌 것이다.

가장 심했던 시기에는 두통약을 달고 살았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정도로 편두통이 심했었다.

지나고 나니 긴장도가 너무 높아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두통약을 필요할 때 가끔 먹는 수준이다.



내가 가진 특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땐 참 많이도 고단하게 살았다

마음도 고단했고 몸은 더 고단했다.








저처럼 정말 심하다 싶을 수준으로 사람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분 계실까요?

저는 정말 심하거든요.

저에게 강한 인상을 주지 않거나 제가 강한 느낌을 받지 않으면 그냥 다 흐릿합니다.



저희 옆집 아주머니는 워킹맘이고 정말 마주치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일 년 해봐야 몇 번 마주친 적도 없을 정도거든요.

주말이면 모두 어딘가로 가시니까요.

어쩌다 현관 앞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돌아서면 기억이 잘 안 나요.

그렇게 몇 번을 마주쳤어요. 



황당한 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는다는 거예요.

좀 평범한 스타일이긴 하십니다. 

하지만 똑같은 사람은 없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경우 흐릿하게 기억이 나요.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심각하게 제 지능에 대한 의심을 한 적이 있어요.

검사결과 지극히 정상이더군요.



그래서 전 사람과 느낌을 연결 짓기 시작했어요.

의도적으로 그 사람의 얼굴과 느낌 그리고 제 감정을 연결시켰어요.

그렇게 하니 뿌연 느낌이 조금은 덜해지더라고요.

제가 가진 오감을 다 이용해서 사람 얼굴하나 기억하려고 애쓰는 점..

누군가는 이런 노력 없이도 다 기억이 나겠죠?



잊어버리고 싶은 건 그날의 습도까지 기억나게 만들어놓고

기억하고 싶은 건 흐린 안개처럼 가려버리고..

참 얄밉고 짓궂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저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내려놔야 할 것은 과감하게 내려놓고

더 노력하지 않으며

제가 가진 지독한 축복이

오히려 더 좋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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