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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29. 2024

감정의 씨앗







감정이 먼저인가

생각이 먼저인가

무엇이 먼저인가




 감정과 생각은 
분리되지 않고 서로 맞물려있다.
 

 둘 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우리는 이 둘의 혼합체다.







나는 감정에 취약했다. 이 보다 과거의 나를 잘 설명하는 문장이 없다.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사람이었고 사람들의 작은 눈빛에서 찰나의 감정을 느꼈다. 그것이 나를 압박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사람을 많이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마치 누군가 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이유 없이 감정에 허덕이는 경우도 있었다. 유난히 사람이 가진 고유의 에너지를 잘 느끼는 성향이 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스스로 하는 생각도 큰 원인이었다. 감정을 파고들어 괴로움의 원인을 찾으려 했을 때 쩌억하고 갈라지는 듯한 알아차림이 왔었다. 나도 잊고 싶은 과거의 한 조각이 있다. 감정에 허덕이는 나, 그 원인은 내 안에 숨어있던 어떠한 생각이었다. 정확히는 그 생각을 떠올리는 기억이라는 감각이었다. 누군가를 통해 건드려진 감정이 기억을 꺼내고 결국 원치 않은 내 생각을 건드린 것..



괜찮은 척 미소 짓는 얄팍한 내 안에 은근슬쩍 감춘 묻어둔 생각... 

결국 건드려졌을 때 터져 나오는 원인은 그 생각이라는 씨앗이다. 죽지도 않고 영생하듯 숨어있던 그 생각이라는 씨앗이 싹이 터져 나오듯 밖으로 나와버린 경우다. 그 씨앗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뿌리가 땅을 헤집고 나와 나를 흔들어 놓는다. 묵혀둔 것을 마주했을 때 나는 와르르 무너진 거고..

친구와의 대화 중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어떤 기억을 되살리며 나를 불안 속에 빠뜨렸던 적이 있다. 그 작은 말 한마디가 과거의 상처를 깨웠고 나는 그 상처와 마주해야 했다.







누구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이 있다. 내 속에 있는 여러 개의 방 중 허름한 창고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버린 생각.. 외로움, 실패한 인간관계, 그리고 어렴풋이 남아 있는 죄책감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지 않기 위해 자물쇠를 단단히 채웠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 했던 것을 감정을 통해 건드려졌을 때 휘청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하게 웃고 살지만 그렇지 않은 나도 내 안에 있다.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창고에 보관되어 버린 과거이다. 완전히 해소되어 버렸다면 감정이 건드려졌을 때 터지듯 올라오지 않을 테지..



자물쇠를 열고 창고 문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나의 모든 상처가 먼지와 함께 쌓여 있었다. 그 상처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할 때마다 그 무게에 눌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게가 점차 가벼워졌다. 그렇게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생각을 흘려보낼 수 있다. 도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창고의 문을 열고 흘려보내야 한다. 

쉽지 않다. 그래 쉽지 않지..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창고 문을 열어젖히고 그냥 지낼 수 있게 된다. 누군가 같은 감정을 건드린다 해도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게 된다. 







이제는 안다. 그래서 걸어 잠그고 묻어둔 것을 꺼내 흘려보내려 한다. 한 번에 되지 않는다면 두 번 하고 세 번 하고.. 힘들어서 그냥 다시 창고에 넣더라고 다음에 다시 해본다. 담금질을 하듯 물에 씻어내듯 그렇게 헹구고 헹궈서 흘려보낸다. 수도 없이 반복된 과정에 흘러간 줄도 모르고 흘러간 것을 떠올리기도 한다.







감정과 생각은 결국 함께 흐르며 나를 만들어 간다. 

이제 나는 그것을 더 이상 억누르지 않고 흘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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