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어렸던 나

중3 학원에 가다

가고 싶지 않았다.

by 유진




우리 엄마는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지금도 미스테리한 그 선택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내가 중3이었을 때였다. 갑자기 학원을 알아놨으니 가보라고 한다. 응? 어디?

세상에나 전교에서 꽤나 잘한다는 아이들만 소수로 가르치는 수학학원이라나?

엄마.... 정신은 멀쩡하신 거 맞죠? 어디에 홀리신 건 아니신지??

아무래도 옆집 아주머니랑 둘이서 사기를 당한 거 같다. 전교 10등 안에 든다는 그런 아이들이 배운다는 학원에 내가 왜 가냐고... 엄마.. 현실을 보세요 좀...



엄마는 너무 바빴고 내 성적이나 공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으셨다. 그냥 누군가가 어느 학원이 좋다 하면 보내고 어떤 과외선생님이 좋다 하면 시키셨거든..

그래서 나는 중구난방식의 학원에 과외를 해야 했다. 내가 왜 중구난방식이라고 했냐면 엄마가 내 실력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랬다 저랬다 하며 뺑이를 돌리신 거 같다. 그게 고등학교까지 쭉 연결이 되었으니까.. 과외 선생님들도 그냥 시간 때우다가 간다는 생각으로 나를 지도한 거 같다. 지금 생각해도 그리 정확하게 제대로 내 실력을 올려준 선생님은 없었으니까..

그 시절의 나는 꽤나 순종적이었고 싫어도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냥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랬다. 어서 졸업해서 고등학교까지 빨리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



엄마는 나를 너무 사랑하셨지만 어떻게 사랑을 줘야 하는지 어떤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는 전혀 모르셨다. 나를 너무 몰랐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면 보살핌만 기억이 난다. 진지한 대화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내가 뭘 필요해하는지 알아줄 사람도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사랑은 그냥 헌신이었다. 헌신적인 보살핌 그게 전부다. 다른 사랑은 느끼지 못했던 거 같다. 나는 아주 사랑받는 아이였고 아무리 장난을 치고 동생과 다툼이 있더라도 체벌 한번 없이 곱게 자랐다. 그게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런데 나는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하루 종일 붙어서 대화하고 싶었다. 눈을 마주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모든 과거에는 그런 기억이 없다. 헌신적인 사랑만 남아있다. 그래서 그런 헌신에 불만을 갖는 것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물었지..



그런데 내 아이는 굉장한 아이다. 아기 때부터 확실하게 짜증을 내더니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확실하게 짜증을 낸다. 어찌나 따박따박 말을 잘하는지 가만히 보면 ' 어라? 이 놈 봐라? ' 싶을 때가 많다. 유아기 때는 너무도 대단히 화를 내서 이 녀석을 어떻게 키울지 난감했었다. 하지만 수십 권의 육아서적과 강의와 경험치로 인해 이제는 다스릴 수 있다. 난 좀 허용적이면서도 굉장히 단호한 편이다. 내 성향을 표현하자면 그게 맞는 거 같다. 내 방식이 옳다는 게 아니라 내 육아법이 그렇다는 얘기다. 나름대로 아이와 지지고 볶다 보니 내게는 이게 맞는 방식이었고 아직은 괜찮게 굴러가고 있다.



나는 아이가 자신의 생각과 불만을 정확히 얘기해주는 게 반갑다. 대드는 것도 좋고 따지는 것도 좋다. 그럼 같이 논쟁을 하면 그만 아닌가? 같이 치열하게 대화도 해보고 합의점도 찾아본다. 이 녀석을 설득해야 될 때도 있고 내가 설득을 당할 때도 있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했으면 좋겠다.



" 이건 싫어 나는 이걸 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

난 이걸 못했거든.. 언제나 스스로 내 생각에 갇혀있었던 건... 그렇게 말하지 못했던 어린 내가 있었기 때문 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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