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알통~!
말 그대로다. 나는 산으로 등교를 했다. 그 시절은 한참 예쁠나이인 중학생 시절이었다. 나는 매우 마른 아이였는데 중학교 3년간의 등산이 내 다리만큼은 튼튼하게 만들어줬다. 알통이 생겼거든... 앙상한 마른 가지 같던 내 종아리가 3년 만에 근육질 다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알통이 지금도 여전하니까 대단한 결과이지 않는가?
내 아침은 아주 정신없는 단거리 경주 같았다. 그 시절에 나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나는 7시 15분에 버스를 타야 무사히 등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버스를 타게 될 차례가 되면 마을버스는 자기도 죽겠다며 끙끙거리며 내 앞에 섰다. 그냥 보기만 해도 안쓰러울 정도로 꽉 차있는 버스에는 사람이 들어갈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냥 집어넣는다는 표현이 딱 맞겠지...
나는 아침부터 나를 그런 짐짝처럼 구겨 넣어서 겨우 버스를 탔고 이미 지친 몸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손가락이 하얘질 정도로 손잡이든 기둥이든 잡고 매달렸다면 이제는 진짜가 남았다. 바라만 봐도 한숨이 나오는 오르막은 중학생인 나의 뒷목도 저릿하게 만들었으니까...
길고 긴 평지가 오르막에 오르기 전 내 다리에 워밍업을 시켜줬다면 이제는 올라가야지..
한겨울 뚱뚱한 내 파카도 등이 졌을 만큼 대단한 오르막이었다. 대체 그 옛날에 무슨 생각으로 이 꼭대기에 여자중학교를 만들었을까? 그 시절엔 땅값도 너무 쌌고 그냥 평지 아무 데나 만들었어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야...중학교만 거기에 있던 게 아니라 고등학교도 거기에 있었거든... 국립이다... 젠장... 국립...
돈 좀 쓰지... 30년은 된 거 같은 그 학교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이제는 땅값이 비싸져서 내려오지도 못한다.
나는 그 시절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던 그 시절 엄마의 권유고 나발이고 내가 다시 이 오르막에 오르면 사람이 아니라며 탈출했다. 서울에선 시험을 치르지 않았지만 내가 사는 지방에선 시험을 쳤었다. 고등학교를 떨어지는 아이까지 있었으니까.. 꽤나 인기 있던 국립 남고는 그 시절 200점 만점에 180점인 학생들이 바글바글했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지방이 이렇게 치열하기도 하다. 조그만 지방에서 교육열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나는 결국 인기 1위라는 국립 여고에 가기를 거부했다. 3년만 더 다니면 내 다리가 밭에서 막 뽑은 그것같이 될 거 같았거든... 그래서 선택한 건 그 당시 순위 2위의 사립여고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잘 한 선택이었다.
나는 평지에서 마음껏 돌아다녔고 야간자습이 있는 날에는 아이들과 택시를 타고 나가 맛난 간식 사 먹고 후다닥 뛰어와 야자를 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추억이 많았다. 점심시간엔 얼른 점심을 먹고 나와서 김밥도 사 먹고 라면도 사 먹었지. 아이들이랑 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경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국립 여고를 갔었다면 그런 추억 따위는 없었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은 마치 수녀원 같았다. 들어가면 해가 질 때까지 나올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그 등산을 또 해야 하는데 누가 나오겠어..
마음이 어찌나 편했던지 살이 10킬로나 쪘다. 반에서 제일 말랐던 내가 10킬로나 찌다니 얼마나 잘 먹었으면 그랬을까... 학교밖에 나오기가 너무 편해지다 보니 온갖 간식을 먹으러 돌아다녔고 결과적으로 알통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지만 10킬로를 얻었다.

그래도 좋았다. 학교 앞에서 사 먹는 한 줄 김밥은 정말 맛있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