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링」 05
나의 딸 세윤은 내가 도선주 여사를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예지를 이모라고 불렀다. 예지 이모, 예지 이모, 하다가 가끔은 크리스틴 이모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와 예지가 친자매인 건 아니었지만 이십 년 동안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래서 세윤의 입장에서는 예지가 엄마의 가장 오랜 친구였기에, 다른 호칭보다도 이모라는 호칭이 가장 무난하고 나았다. 처음에 나는 내가 예지와 이토록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 나가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다시피 우리의 첫 대화는 오스트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 관한 것이었는데, 만남의 시작이 그런 식이라면 누구라도 상대방을 향해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서로를 오해하다가 나중에 뒤늦게 친해지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예지를 잘난 척하는 새침데기로 여겨서 미워하면서도 은근히 질투했으며 예지는 나를 붙임성만 좋은 덜렁이로 여겨서 한심해하면서도 역시나 은근히 질투했다. 친구가 되기 힘든 조건이었다.
그러나 평생 가까워지지 않을 줄 알았던 예지와의 관계는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느 아이의 생일 파티 날을 계기로 완전히 달라졌다. 생일 파티를 열었던 그 아이는 또래들보다 키가 훌쩍 크고 축구를 잘해서 누구에게든 인기가 많았다. 당연히 그 아이가 생일 파티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너도나도 초대를 받고 싶어 조바심을 냈다. 더군다나 파티 장소도 동네에 새로 오픈한 피자 가게였다. 그 피자 가게 매장의 가장 안쪽에는 칸막이로 분리되어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단체석이 있었는데 미리 예약을 하면 풍선도 달고 놀 수 있었기에 조금 잘나간다 싶은 아이들은 다 그곳에서 생일 파티를 열곤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초대를 받았고 예지는 못 받았다. 나는 원래 두루두루 애들과 잘 지내는 편이어서 그 아이와도 장난을 많이 치며 놀았지만 예지는 그 아이와는 말 한마디 제대로 섞어 보지 않은 처지여서 그랬다.
문제는 생일 파티 당일이었던 화창한 일요일 오전, 초대를 받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피자 가게에 모여들기 시작할 즈음 예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나타나면서 발생했다. 그 둘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게 나였다. 내가 피자 가게의 문을 막 열기 직전에 그들도 도착했는데, 바로 그 앞에서 마주친 것이었다. 나는 문에 한 손을 댄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예지는 초대를 받지 못했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곤 예지와 예지의 어머니를 살폈다. 예지는 늘 그랬듯이 나에겐 없는 꽃무늬 레이스 원피스를 걸치고 큐빅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있었으며, 예지와 똑 닮은 예지의 어머니도 블라우스에 치마를 갖춰 입고 모자까지 쓰고 있어 누가 봐도 멋쟁이 느낌이 났다. 그런데 예지의 표정이 이상했다. 다른 아이들이 무슨 말만 해도 콧방귀를 뀌던 평소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어딘가 주눅이 들어 있었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앞을 바라보지 않았다. 무엇보다 얼굴빛이 창백했다. 나는 여전히 문에 손을 올려 두고선 그냥 먼저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어른을 봤는데 인사를 안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예지의 어머니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예지는 그제야 시선을 들어 나의 존재를 눈치챘다. 안색이 더 창백해졌다.
“어머, 안녕. 우리 크리스틴 친구니?”
“네, 이다솔이에요. 예지, 아니 크리스틴 앞자리에 앉아요.”
예지 어머니는 눈을 반짝거리며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렇구나. 다솔이를 만나서 이 아줌마가 정말 기쁘네. 얘가 며칠 전부터 오늘 생일 파티 있다고 자랑해 놓고선 갑자기 안 간다고 하는 거야. 선물도 샀으면서 말이야. 그래서 그럼 선물이라도 주고 오자고 내가 데리고 왔단다.”
나와 예지의 눈이 마주쳤다. 예지의 눈에 당황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예지는 한 손에 포장지로 곱게 싼 선물을 들고 있었다. 그 선물을 뒤로 감추며 예지가 갑자기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안 간다고 했잖아! 가기 싫다고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