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링

「허들링」 06

by 황윤정

예지의 어머니는 예지가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고 예지는 본인이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예지와 예지의 어머니가 실랑이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어쩔 줄 모르고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인사도 했으니 그냥 먼저 들어가 버릴까, 아니면 예지가 입학 첫날 나에게 무안을 줬듯이 나도 예지의 어머니 앞에서 예지를 난감하게 만들어 버릴까, 잠시 그런 갈등에 휩싸였다. 한편으로는 얼굴도 가물가물한 나의 엄마를 떠올리며 ‘우리 엄마도 사진으로 보면 꽤나 멋쟁이던데’ 하는 뜬금없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어쨌든 확실한 점은 내가 예지와 예지의 어머니를 앞에 두고 그 짧은 시간 내에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으면서도 예지를 챙겨야겠다는 마음은 맹세코 절대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참 의아한 일이 일어났다. 멀리서 초대를 받은 다른 친구들 두어 명이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자마자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예지에게 가까이 다가가 예지의 손을 꽉 잡았던 것이다. 예지는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못 본 척하며 예지의 어머니에게 잘 놀고 오겠다고 말했다. 예지의 어머니는 너무나도 좋아하며 내게 당부했다.


“다음에 집에도 꼭 놀러 오렴, 다솔아.”


나는 예지의 손을 잡은 채 피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매장의 가장 안쪽으로 걸어가자 이미 도착한 반 친구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내게 인사를 하려던 친구들은 예지를 보곤 멈칫했고 그것을 느낀 예지가 시선을 내리깔며 내 손에 잡혀 있던 자신의 손을 빼려고 힘을 주었지만, 나는 예지보다 조금 더 힘을 주어 아예 깍지를 껴버렸다. 그리고 일부러 깍지 낀 손을 들어 올려 흔들며 모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야, 내가 예지 데려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비어 있는 자리에 예지와 나란히 앉았다. 다행히 반 친구들은 속으로 탐탁지 않아 했을지언정 굳이 왜 예지를 데려왔느냐고 시비를 걸지 않았다. 더군다나 생일 파티 주인공이었던 아이의 어머니가 예지를 향해 잘 왔다고 재밌게 놀라고 말해 주어서 그 뒤부턴 다들 처음부터 예지가 초대를 받았었던 것처럼 대했다.


나와 예지는 그날 피자 가게에서 계속 옆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지만 파티가 다 끝나고 나서는 조금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래서 그냥 평소처럼 데면데면한 사이로 다시 돌아갈 거라 여겼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별말 안 해도 예지가 먼저 물건을 빌려주기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눠 주기도 해서 아, 이렇게 친구가 되는 거구나, 가슴 한편이 처음 느껴 보는 감정으로 일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내리 함께 다녔고, 스무 살이 넘어 예지는 대학에 가고 나는 세윤을 낳아 기르면서 처한 상황이 달라졌는데도 언제나 서로를 가장 친한 친구로 생각하며 서로를 신뢰했다. 사실 도대체 내가 왜 예지 어머니 앞에서 예지의 손을 잡는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처음 손을 잡게 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때 잡은 예지의 작은 손이 마치 피가 통하지 않는 것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어서, 잡는 순간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손이 서늘하게 얼어붙었을 때 누군가가 온기를 지닌 손으로 꽉 잡아 주는 것이 얼마나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일인지 나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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