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링」 07
나는 세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올해부터 미뤄 왔던 학업을 다시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고민을 거듭하다 잠시 멈췄던 학업이었다. 대학 합격 소식과 함께 찾아왔던 임신 소식은 고려한 적 없던 예상치 못한 변수였고 나를 끝없는 혼란 속으로 몰고 갔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는 내가 세일러문 크레파스를 훔쳤을 때 나를 데리러 문구점으로 뛰어왔던 도선주 여사의 당시 나이 열아홉을 넘긴 나이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런 중대한 문제를 혼자 해결할 상황 판단 능력을 미처 갖추지 못한 나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할 때가 되어서야 도선주 여사에게 털어놓았다. 그때 서른을 갓 넘긴 도선주 여사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계속 일을 하며 내 뒷바라지를 해 주고 있었는데, 나에게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던 학교의 신문방송학과에 붙었다는 소식을 알린 날 처음으로 잔뜩 취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랬던 도선주 여사였기에 단호하게 공부를 계속하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도선주 여사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너에게 무조건 대학을 가라고 한 적 없어.”
“그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는 내게 도선주 여사는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지.”
그게 그거 아닌가? 하는 질문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꼭 닫았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도선주 여사와 함께 자던 곳이기도 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온전히 내 방으로 쓰고 있는 곳이기도 한 방이었다. 도선주 여사의 물건은 대부분 다른 방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한쪽 벽에는 영화 〈노팅 힐〉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도선주 여사가 줄리아 로버츠와 같은 배우를 꿈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울면서 왜 나 때문에 이모의 꿈을 버리느냐고, 누가 그런 걸 고마워하기라도 할 것 같으냐고 따졌었다. 내 나름대로는 정당한 추궁이었는데 도선주 여사는 도리어 황당해하며 화를 냈다. 너 때문에 그랬다고 누가 그래? 내가 직접 한 선택을 함부로 안타깝게 여기지 마. 나는 내가 좋아서 너와 더 오래, 잘,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거야.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타인의 선택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건방지고 우스운 일인지,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가변적인 것인지. 나는 포스터 앞에 서서 줄리아 로버츠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를 낳겠다고 ‘선택’했다. 사정상 남편 없이 세윤을 낳았지만 그래도 양육비는 받을 수 있었고 재택근무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세윤을 키우면서도 단 한 번도 세윤을 낳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이번에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 방송 공부에 다시 도전해 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