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

by 신관호

용산역 앞에는 꽤 넒은 광장이 있고 광장너머론 그 앞에는 넓은 차도 그 너머론 시장과 숙박업소, 크고 작은 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역앞 제일 윗 계단에 턱을 고이고 앉은 나는 지금 바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나의 처지를 생각하며 대책 없는 불안속을 헤매이고 있다.

그저께의 일이다. 고1인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내 방에 가방을 내려놓고 안방으로 들어섰다. 어머니, 아버지, 조카들 저녁밥상에 앉은 식구들의 분위기가 어딘가 서먹서먹하고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들이다.

어머니께서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신다.

“ 얘, 사랑방에 손님이 오셨다.”

“ 어떤 손님이 오셨는데요?”

“ 너를 만나러 오신 손님인데 너를 서울로 데려가고 싶으시대.”

어머니께서는 천천히 입을 여시어 자세한 얘기를 하신다.

서울에서 오신 손님은 용산에서 철도 고등학교에 다니시고 지금은 충주비료공장에 다니고 있는 내 바로 윗 형과 열차 안에서 만나 대화하던중 알고 지내는 분이라는데 나를 데리러 왔다는 것이다. 자기 형이 치안본부에 고위직 공무원으로 있고 그분 말씀이 치안본부 자기가 근무하는 곳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있어 학생들 몇 명을 구하러 다닌다는 것이다.

나는 저녁밥을 대충 먹고 사랑방에 계신 손님을 만나러 갔다. 손님은 나의 사종 형님이신 정호형님과 같이 계셨다. 정호형님은 홍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공군복무를 마치고 집에서 딱히 하는 일도 없이 빈둥빈둥 놀고 있는 꽤나 똑똑한 청년이었다.

우리집은 초가집으로 매우 큰 집이었는데 원래 삼종숙의 집으로 삼종숙께서는 꽤 넒은 토지를 소유하신 지주로 서울에서 신학문을 배워 전문학교를 마치시고 사업을 하시던중 6.25를 만나 내려와 계신지 여러해째로 이제 전쟁후 정리되어가는 세정과 함께 서울을 자주 오르내리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며 지내시고 정호형님은 삼종숙의 큰아들이다.

아버지께서는 삼종숙의 농지를 빌려 소작을 하며 그 집에 살기를 이십여년째하시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신다.

서울에서 오신 손님에게 우선 절을 하고 인사를 했다.

“네가 관호냐?”

“예, 그렇습니다.”

“네 형의 똑똑한 모습에 빠져 대화 하던 중 네 얘기를 들었다. 재주도 좋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는데 여기 시골 있어서는 희망이 없을 것 같으니 서울에 가서 낮에 일 좀하고 야간학교를 다니며 준비해서 대학도 가고 하는게 네 앞날을 위해 좋은 일이 아니겠니?”

손님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기 형이 치안본부에 고위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마침 자기소관의 부서에 아르바이트 학생을 몇 명 구하고 있는데 먼저 내 생각이 나서 데리러 왔다는 것이다. 길게 이어 나가는 손님의 설명에 나는 물론 어머니 아버지 옆에 계신 정호형님까지도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좀 일찍 학교로 갔다. 담임 선생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서울로 갈 수밖에 없음을 얘기했다. 전학서류도 없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모든 절차가 끝나고 교실 친구들과도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서둘러 서울로 따라갈 준비를했다.

준비사항으로는 모포 한 장, 성경책과 교과서 몇권, 쌀 서말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으로 야간학교 입학 등록금과 생활비로 어머님께서 급하게 돌아다니시며 구하신 현금. 요즘 돈으로 몇 십만원.

나는 쌀자루를 멜방지어 등에 지고 가방을 든 채로 집 뒷산을 넘어 신대, 새터, 팔괘리, 구룡리, 하나물 냇물을 건너 홍성역까지 약 6km의 길을 서울에서 오신 아저씨를 따라 걸어갔다.

홍성역에서 열차표 두 개를 사들고 앞장서시는 아저씨를 따라 열차에 올랐다. 아저씨는 열차 시렁에 얹고 나를 자리에 앉히고는 어딘가 다른 칸으로 가더니 용산역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나는 마음이 좀 불안해졌다. 옆에서 같이 있으며 설명도 좀 하고 얘기도 나누고 하지 않고 다른 칸에 가서 누굴 만나 무엇을 하는지 나는 여간 궁금하지 않았다.

세 시간을 넘어 열차는 용산역에 도착했다. 그 때에서야 서울에서 오신 아저씨는 나타나서 나의 짐중 작은 것 하나들고 앞장서고 나는 쌀자루를 짊어지고 보따리를 든채로 용산역을 나왔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한번 와 보고는 서울에 발디디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더구나 용산역은 처음이다.

광장을 지나고 넓은 차도를 건너 시장에 들어 한 골목을 들어서니 서울에서 오신 아저씨는 나를 세워놓고 쌀자루를 맡기겠다고 들고 가시더니 한시간이나 지난 후에 나타나셨다.

다시 한번 골목길을 한참 지나 어느 여인숙으로 나를 데라고 들어간다.

“ 오늘 저녁은 여기서 묵어야 하겠다. 내가 가서 우선 야간학교에 입학할 등록관계며 서류준비를 하고 오겠다. 너는 내일 저녁부터는 야간학교에 등교하게 될거야. 그리고 치안본부에 다니는 형님은 내일 아침에 만나 뵙고 너는 바로 아르바이트 일자리로 나가게 될거야.” 나는 아무 말없이 듣기만 하고 있었다.

“ 야간학교에 등록하려면 등록금이며 서류절차 들어가는 돈이 많으니 있는데로 다 주라.”

나는 한마디 질문도 없이 가지고 온 돈 한품도 남기지 않고 다 꺼내 주고 내방이라는 곳에 들어 짐을 정리했고 서울에서 오신 아저씨는 옆방에 들었는지 죠바아가씨하고 웃기도 하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라졌는지 잠잠해졌다. 점심은 엇되게 먹고 저녁은 굶은 채로 나는 여인숙 방에서 잠을 자야했다. 말이 잠이지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했다. 열차 안에서부터 전혀 내게 곁을 주지않는 서울서 오신 아저씨의 정체가 조금씩 미덥지 않기 시작했고 이제부터 펼쳐질 나 혼자만의 도시생활에 대한 걱정과 궁금증이 나를 조금은 불안하게했다.

뒤척이며 앉았다 누웠다하기를 얼마나했는지 날이 밝았다.

서울에서 오신 아저씨라는 분은 아침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나는 여인숙앞 계단에도 앉았다. 여인숙을 나와 골목길을 걸어도 보고 시장 입구까지 가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하고 그러다가 다시 여인숙에 돌아와 그 사람이 돌아왔는가 확인도 해보며, 그러다가 점심때가 되었다. 시장끼가 느껴지지만 모두 다 털어주고 주머니가 비었으니 방법이 없다.

점심때가 지나니 여인숙 주인은 나를 불러 사정얘기를 물었다. 모든 얘기를 들은 여인숙 주인은

“ 학생, 사기 당했어. 도시엔 요즘 그런 일들이 아주 많아.”

그래도 나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하며 믿음을 변치 않았다. 오후 시간도 빨리지나 벌써 네다섯시는 된듯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집으로 돌아갈 차비도 없고.

도대체 대책이 없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여기 용산역앞 계단에 앉아있다.

한참이나 답이없는 고민을 하던중 머릿속에 희미하게 한가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랫집 친구 기웅이 아버지가 용산시장에 곡물가게를 차렸다는 이야기였다. 기웅이 아버지는 농사소득이 가ㅖ를 꾸려나가기 힘들어지자 홍성에서 쌀과 잡곡을 사서 서울에 가서 파는 장사를 얼마전에 시작했다. 사가지고 간 곡물을 서울에 가서 상회에 넘기다가 직접 가게를 마련해 막내 동생을 시켜 팔고있다는 것이다. 그 가게 있는 곳이 용산시장이고 가게 이름이 형제상회라고 하는것까지 생각났다.

그렇다면 그 곡물가게가 용산 이 넓은 땅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우선 시장쪽을 찾아보기로 하고 용산시장을 찾아들어 헤매기 시작했다.

한참을 헤매다 곡물시장으로 접어들었다. 크고 작은 곡물가게들이 꽤나 많다. 하나 하나 확인하며 돌아다니던 중 내 눈에 확 들어오는 작은 간판 [형제상회] 드디어 나타났다.

먼 발치에서 보니 손짐들이 줄지어 서 있고 곡물자루를 채워주고 있는 사람은 아랫집 친구 만내삼촌 종현이 형이었다. 종현이형은 나보다 여덟살이나 많은 청년으로 내가 어렸을때부터 좋아서 따라다니고 형도 나를 가는데마다 데리고 다니며 팽이도 깎아주고 썰매도 만들어 주곤하던 나의 친형보다 더 가까운 이웃형이다.

나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형앞에 불쑥 나타났다.

“ 관호 네가 어쩐일이냐? ” 형은 반갑게 나의 손을 잡았다. 나는 하나님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으로 엊그제부터 있었던 나의 일을 대충 얘기했다.

형은 마지막 손님까지 다 치루고 나서 우선 저녁부터 먹자며 근처 식당에 가서 식사부터 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형의 가게에 돌아오니 날이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가게 한쪽에 합판으로 만든 침상에 누워 모든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

“ 예, 너 큰일날뻔 했구나. 서울에는 이런 사이꾼들이 많이 있어. 그만하기 다행이지. 몹쓸곳에 디리고 팔아먹는 사람들도 있어. ”

그날 밤 나는 전날 못잔 잠까지 실컨 자고 아침이 되었다.

형은 내게 차비와 여관비 치를 돈을 손에 쥐어주며 조심해가라고 거듭 당부하고 나는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며 헤어졌다.

그길로 하루 묵었던 여인숙을 찾아 숙박비를 치르고 홍성행 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깜짝 놀라며 다행스럽게 잘 돌아왔음을 반겼다.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음날부터 선생님들과 친구들과의 행복한 생활이 이어졌다.

하마터면 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뻔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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