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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글렛 Apr 03. 2023

내 게임이 사라졌다 - 패키지 게임 편 (1)

추억이 돼버린 '반지의 제왕: 중간계 전투’  

게임은 어디까지나 수명이 있다. 온라인 게임이든, 패키지 게임이든 영원불멸한 게임은 없다. 온라인 게임은 유저수가 줄어들어 더는 수익성을 갖지 못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서비스를 종료한다. 사후 서비스 차원에서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멀티플레이가 주가 되는 온라인 게임 특성 상 혼자 남은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패키지 게임도 시간이 지나면 플레이를 지속하기에 제약이 따른다. 실물(CD, 게임팩)로 소장하는 게임의 경우, 실물 보관상의 문제(분실, 파손)가 발목을 잡거나, 플레이를 위한 기기(콘솔, PC 등)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어렸을 적 내 방엔 게임CD가 굉장히 많았다. 오늘날 스팀 라이브러리에 하지도 않는 게임을 잔뜩 사서 쟁여놓는 것처럼, 과거엔 책장 한 칸을 게임CD로 장식했었다. 실상 플레이하는 게임은 정해져있다. 나머지는 자기만족이라고나 할까.

평론가 리뷰 모음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상당히 높은 점수에 속하는 중간계 전투

그 중 가장 좋아하던 게임은 바로 반지의 제왕 IP(지적재산권)를 바탕으로 한 RTS(실시간 전략)게임 ‘반지의 제왕: 중간계 전투(이하 중간계 전투)’였다. EA 로스앤젤레스가 개발한 이 게임은 판타지 소설의 대부 격이자 영화로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그대로 구현했다. 성공한 IP의 힘을 믿고 어설픈 완성도로 출시한 여타 게임들과는 달리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 전 세계 100만장 이상이 판매됐으며, 메타크리틱 점수 82점의 호평을 기록했다.


중간계 전투는 당시 기준으로 정교한 그래픽과 원작(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고증에 충실한 작품이다. 캠페인 모드는 영화 3부작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 직접 영화 속 전투를 실현해 볼 수 있다. 스커미쉬 모드는 일반적인 RTS 장르의 싱글 플레이로, 곤도르, 로한, 아이센가드, 모르도르 4개 진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RTS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봤고,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본 사람들이라면 어떠한 진입장벽도 없다.

영화 속 대규모 전투가 가능했던 중간계 전투

영화 속 세계를 그대로 가져온 단순한 전략 게임이었다면 마냥 호평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게임에서 가장 독특했던 지점은 기마병이 달려가서 걸어 다니는 적과 부딪치면 데미지가 적용됨과 동시에 뒤로 나뒹굴게 되는 시스템이다. 지금은 여러 게임에서 볼 수 있지만 게임이 출시된 2000년대 초반(2004년 제작)에는 흔치 않았다. 덕분에 영화에서 본 로한의 기마대가 엄청난 수의 오크를 전속력으로 들이받는 장면을 직접 시현할 수 있었다.


반지의 제왕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엄청난 스케일의 대규모 군대일 것이다. 게임에선 그것 또한 재현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시스템은 인구수 제한이 걸려있지만 이른바 ‘100만 대군 모드’라고 불리던 인구수 제한 해제 패치(블로그, 팬카페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를 하고 나면 셀 수 없이 병사를 뽑는 게 가능했다. 컴퓨터가 렉을 견뎌주기만 한다면 영화 장면 재현도 가능했던 셈.

개인적으로 꼽는 반지의 제왕 최고 명장면. 영화에 감명 받아 게임, 책, DVD까지 구입했다.

이밖에도 트롤이 병사를 잡아서 던진다던지, 발록 근처에 있으면 불길에 타듯 데미지를 입는다던지, 영웅 캐릭터의 성능이 영화 속 모습과 같아서 일당백을 해치운다던지 하는 등의 장점이 무수한 게임이었다. 중간계 전투는 상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2006년 속편(소설 실마릴리온을 바탕으로 함)이 나왔으며, ‘마술사왕의 부활’이라는 확장팩도 출시했다.


이 게임이 내게 준 가장 큰 의미는 처음으로 개인패치, 즉 ‘모드(mode)’ 사용과 카페 활동을 시도하게 됐다는 점이다. 게임의 시스템을 일부분 수정해 입맛대로 바꾸는 ‘능력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들은 공들여 만든 모드를 사이트를 통해 배포해 다른 사람도 즐길 수 있게끔 했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팬카페를 통해 정보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희귀한 자료를 외국 사이트에서 가져오거나, 직접 제작하는 사람들은 카페에서도 높은 지위에 올랐고 수많은 회원들의 칭송을 받았다.

간혹 다운로드 받은 모드 안에 바이러스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모드를 여러 개 중첩해서 사용하다보면 시스템 충돌이 일어나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에 처할 수도 있다.

가장 아끼고 좋아한 게임이었지만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더 이상 플레이할 수 없어졌다. CD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선 CD를 읽을 수 있는 CD-ROM이 필요하다. 통신기술의 발전과 USB등 저장장치의 발달로 블루레이(Blu-ray)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CD를 접하기 힘들어졌다. 새로 나오는 컴퓨터들도 CD-ROM 자체가 없는 경우가 다수. CD-ROM이 있다고 해도 구작 게임들은 변화한 윈도우를 지원하지 않아서 실행 자체가 안 된다. 오래된 게임을 위해 오래된 컴퓨터를 장만하기엔 수고가 크다. 결국 추억으로 묻어둘 수밖에.


소장하던 CD도 시간이 지나자 거뭇한 반점들이 생겨났다. 박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책장을 가득 채웠던 게임CD들은 대부분 파손되거나, 잃어버리거나, 버려졌다. 잘 보존된 소장품의 높은 가치를 일찍이 알았더라면 소중히 보관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

RPG로 출시된 반지의 제왕 미들어스 시리즈. 오는 5월에는 골룸을 주인공으로 한 잠입액션 게임도 출시된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처럼, 내가 사랑하고 즐겼던 게임이 추억의 한편이 되니 괜히 서운하다. 반지의 제왕 게임은 이후로도 ‘미들어스 시리즈’라는 RPG 장르로도 출시 돼 히트를 쳤지만,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았다(스토리가 별로였다). 어느순간부터 게임계도 리메이크, 리마스터가 유행이다. ‘내 게임’ 중간계 전투도 언젠가 리메이크로 출시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가능성은 희박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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