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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May 31. 2023

나의 세 번째 해외살이가 시작된 이곳, 아부다비

팔자 좋기로 소문난 주재원와이프가 되었다.

20대엔 공부를 하고 싶어 뉴욕에 갔고,

30대엔 일을 하고 싶어 하노이에 잠시 살았다.

40대가 된 지금, 처음으로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세 번째 해외살이가 시작되었다.

이름마저 낯선, 아부다비에서.


졸지에 팔자 좋기로 소문난 '주재원와이프'가 된 나의 메인 잡(job)은 '하준맘'이 되었다.




잠시 머무르다 가는 사람들이 많은 환경적 특성 때문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질문은 거의 정해져 있다.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언제 돌아가세요? 한국에선 일하다 오셨어요?" 

비단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 사람들을 만나도 대부분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낯선 곳에서 소개하는 나는 항상 이런 식이 었다.

"저는 남편이 주재원 발령을 받아 아부다비로 오게 되었고, 4~5년 정도 후에 귀임할 예정이에요. 미술을 전공해서 미술관이나 관련 공공기관에서 일했어요. 출산을 하면서 일을 쉬게 되었고요. 이제 아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저도 여기서 슬슬 일을 하고 싶어요."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던 어느 날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감.

회원가입 시 직업 카테고리에 '주부', 낯선이들에게 나를 'housewife'라고 소개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 과연, 여기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기회가 있을까?

한국에 돌아갔을 때 나이는 팀장급인데 경력은 단절된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6개월 남짓의 시간이 지났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지낸 하루하루는 점점 익숙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이 되어갔다. 아들을 기관에 보내고 내 시간이 생기면서 버킷리스트들도 하나씩 실현했다. (골프 1인 플레이, 등원 후 두바이 당일치기 등)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낮잠이라도 자면 괜한 죄책감이 들었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미친 듯이 요리를 했다. 소위 말하는 #아이와가볼만한곳 도장깨기도 해봤고, 그 사이에 유럽여행도 두 번이나 다녀왔다. 아들과 함께하는 해외생활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고, 뭐 이렇게까지 성실할 필요가 있나 싶게 열심히 소셜미디어 활동도 했다. (사실 이건 아직도 ing) 


이렇게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를 보며 모두가 대단하다고 극찬을 하는데 

정작 나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여기서 놀고 있지 않는데, 왜 스스로를 자꾸 '잉여인간'이라 생각할까.


'내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을 가사, 육아, 소셜미디어 활동으론 충족시키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이 상황에서 오롯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나를 위한 생산적인 일은 무엇일까 나름 건강한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론은 독서, 어학공부, 운동, 그리고 글쓰기였다.

참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인데 꾸준히 하기는 힘든 네 가지.


하나씩 천천히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전자도서관 어플을 깔았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좋은 학벌을 가지고 대기업에 입사해 국비장학생으로 미국에서 공학박사 취득 후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했던 저자가 말하는 공부라니. 안 봐도 뻔한 이야기겠지 싶은, 조금은 비뚤어진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에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유의미한 잔소리가 모두 담겨있었다. 아이를 옆에 두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평생 공부 하고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 어학공부와 운동을 통한 자기 관리의 중요성, 마지막으로 지식을 소화하고 나누기 위한 글쓰기 연습의 필요성. 이건 내 아이를 키우면서 필요한 이야기기도 했다. 책에 언급된 평생하는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육아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어쩜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내가 생각했던 네 가지를 모두 이야기하는 책이라니. 타이밍은 이래서 참 중요한 거구나.




사실 나는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 중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글을 남길 수 있는 채널이 있지만,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회원가입을 한건 (이미지 중심이 아닌) 정제된 텍스트를 남기고 싶어서다.

주제를 정하고 공부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

이런 글쓰기라면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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