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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지 Sep 15. 2022

내 월급은 재난지원금이 아닐까

 회사 복도를 걷다가 문득, 나 스스로가 우울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기본 설정값이 우울한 상태로 살짝 치우쳐있다. 뭍으로 쓸려 나온 표영생물이 아가미를 헐떡이듯 조금 버거운 상태로 살아간다. 아침에 취약한 나는 특히 오전이면  머리가 축 늘어지고 무거워진다. 모든 직장인이 이렇게 눅눅한 월, 화, 수, 목, 금을 살아가는 건 아닐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 자신이 생존 경쟁력이 낮은 사람이라는 가설 앞에 더 우울해지곤 한다. 미라클 모닝이니, 갓생이니 하는 것들이 트렌드인 시대에 ‘출근이 가장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는 나라니. 어쩐지 별로다.        

   


 뭐랄까, 내겐 직장이 꼭 임시거처 같았다. 때가 되면 자리를 박차고 튀어야 할 듯한 기분에 시달린다. 스물 넷, 방송작가로 있을 당시 내 소원은 월 150만 원을 버는 것이었다. 소원대로 이듬해 월 260만 원을 받는 대학교 계약직으로 취업에 성공했다. 스물일곱에는 월급이 적어도 좋으니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싶었다. 그 다음 해에도 또한 월급이 적고 나름대로 안정적인 문화재단에 취업이 되었다. 스물아홉인 지금은 이보다 더 잘 살아야 할 것 같단 강박에 시달린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방향을 잘 모르겠다. 어느 자리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 좌표가 없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열심히 행해야 하는 지조차 모른다. 그저 조급하고 불안한 상태로 부유 중이다.       



 문화재단이라는 이름이 좋았다. 문화예술에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동시에 나 자신도 행복해질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전시실 설치가 공사인지 용역인지를 두며 고민하고, 데스크톱 등 자산에 라벨을 부착하고, 일반관리비와 이윤, 폐기물처리비 등을 계산하고 있다 보면 문득 내가 상상하던 삶과는 괴리가 있음을 느낀다. 죽을 듯이 힘든 일도 없고 눈물 나게 벅찬 순간도 없었다. 간혹 재단 주최의 행사에 참여하면 참 뿌듯하다가도 쓸쓸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것을 나의 성과라 할 수 있을까? 나의 보람이라 할 수 있을까? 계약담당자라는 포지션은 찬란한 장면들로부터 열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어느 때에는 내가 내 일을 평생 사랑할 수 없을 지 모른단 생각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혼서류를, 직업을 사랑하지 않으면 사직서를! 하지만 남편 없이는 살아도 직업 없이는 생활이 안되지 않나. 이런 이유로 하루의 3분의 1이나 되는 시간을 사랑하지 않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니 이는 재난이다. 어느 때는 하루에도 몇 번 씩 몸안의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구조는 셀프인데 내게는 구조대책이 없다. 어쩌면 내 월급은 위로조로 나오는 재난지원금일지도 모르겠다.  



 돌고 돌아 또 나는 이 우울을 원동력으로 글을 쓴다. 이 우울을 어떻게 방류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어디로 흘러가 정박해야 할지 몰라서. 오늘 읽은 책에서는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생활의 영역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나는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활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서. 어릴 적부터 일관되게 조금이나마 하고 싶었던 건 글을 쓰는 것뿐이어서 쓴다. 내일도 방황할 나에게, 그저 헤맸을 뿐이라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고 싶어서 쓴다.



* 김소영, 『예술감상초보자가 가장 알고싶은 67가지』, 소울메이트, 2013,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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