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룬드그렌 in Billboard Live Yokohama
6일간의 음악 여행의 시작점이 된 건 2월 28일 빌보드 라이브 요코하마에서 열린 토드 룬드그렌의 콘서트였다. 처음 가본 이 공연장은 테이블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1층과 기다란 난간의 좌석이 이어져 있는 2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에 식사와 술을 즐기며 공연을 관람한다는 점에서 블루노트 도쿄와 코튼 클럽과 비슷하나 다루는 음악은 재즈 이외에도 팝과 록, 알앤비 등 다채롭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예전 어느 온라인 음악 커뮤니티에서 토드 룬드그렌을 상찬하던 열혈 회원이 있었다. 박학다식을 자랑하던 그는 토드야말로 딥 퍼플과 재즈 록밴드 딕스 드렉스에서 활약했던 스티브 모스와 더불어 대중음악사상 진정한 천재라며 치켜세웠다. 끝없는 도전 정신과 실험성, 이를 수반하는 예술성과 작가주의가 골자였고 꽤 어려운 음악 이론을 들며 그의 위대함을 적극 표현했다.
공연 특성상 일반적인 단독 콘서트의 80~85퍼센트 정도 분량이었다. 토드 자신을 포함한 세 대의 기타와 하모니 건설에 지대한 역할을 차지한 두 명의 코러스로 풍성한 소리를 구현했고 콩가와 봉고로 라틴적인 리듬을 구사한 부분도 있었다. 전체적인 방향성은 로큰롤이었으며 막강하고 기교 넘치는 솔로로 기타리스트 정체성을 가져갔다. 팔을 허공에 쭉 뻗거나 앞발 차기를 하는 등 액션도 화끈했다. 요정처럼(?) 화려한 금박 장식의 착장으로 1972년부터 1981년까지 방영된 미국 심야 음악 방송 The Midnight Special에서 수줍고 서정적으로 ‘Hello It’s Me’ 연주하던 광경과는 사뭇 달랐다.
열곡 내외의 셋리스트는 그간의 음악 경력을 아울렀다. 2022년에도 스튜디오 앨범을 내놓은 그인만큼 “진행형 예술가”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했다. 본인이 이끌었던 프로그록 밴드 유토피아 시절 ‘Secret Society’와 2000년 작 < One Long Year >에 수록된 하드록 질감의 ‘Buffalo Grass’ 힙합마저 시도했던 1993년도 < No World Order >의 ‘Worldwide Ephiphany’ 와 경력의 시작점인 사이키델릭 밴드 내즈(Nazz)의 ‘Open My Eyes’까지 불렀다.
전성기 작품들은 아니다보니 엄청난 골수팬이 아닌바에야 이입하긴 쉽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곡의 소화 능력이 이를 상쇄했다. 고령의 음악가에게서 느끼는 쇠락의 기미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쩌렁쩌렁한 가창에 종종 굴곡감있는 애드립까지 넣으며 자신감을 표출했으며 자신의 뿌리에 리듬앤 블루스도 있음을 나타냈다. 1948년생임을 믿기 힘든 정력이 마찬가지로 힘 넘치는 세션 연주자들과 더불어 공연의 에너지 레벨을 높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48년생인 에어로 스미스 스티븐 타일러가 떠올랐다. < 반지의 제왕 > 속 엘프 요정으로 유명한 여배우 리브 타일러는 어릴 때만해도 친부가 토드 룬드그렌인줄 알았지만 사실 스티븐 타일러였던 것. 당시 토드의 여자친구였던 미국 가수 겸 모델 베베 뷰엘과 불타는 하룻밤을 보낸 모양이다. 사실 리브의 두꺼운 입술만 봐도 누구의 DNA지 알아채기 쉽다. 2024년 성대 부상으로 투어에서 은퇴한 스티븐과 토드는 또한번 명암이 엇갈렸다.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앙코르로 연주한 명곡 메들리였다. 파워 팝-아트록 걸작 < Something / Anything >의 ‘I Saw the Light’와 아름다운 발라드 ‘Can We Still Be Friends’, 많은 영화에 삽입되었던 초기작 ‘Hello It’s Me’를 연이어 불렀다. 자연스러운 밴드 편곡에 의해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마다 탄식이 흘러나왔고 감동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옆좌석 노부부도 아름다웠다.
토드는 첫 번째 공연(5시 반에 첫 번째 쇼, 7시 반에 두 번째 쇼로 구성되었다)엔 여러 실수와 음악적 민낯(?)이 노출된다며 너털웃음 지으며 이해를 구했지만 기타 이펙터의 작동 오류로 1분 정도 멈췄던 것 빼곤 흠잡을 데 없이 유려한 흐름이었다. 연주자끼리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연주자들과의 합도 돋보였다.
토드 룬드그렌이 범접 불가능한 재능이라던 온라인 어느 논객을 다시 떠올려본다. 스포츠처럼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예술에서 재능 총량의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만은 토드의 Resume(이력서)를 들여다볼수록 독보적인 컬트 아이콘이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전자 음향에 기반한 각종 스튜디오 테크닉으로 시대를 십수 년 앞서갔으며, 정교하고 완벽한 소리를 위해 끝까지 밀어붙이는 완벽주의자적 성격으로 다수의 명반을 빚었다. 온갖 장르를 망라하고 뒤섞어 자신만의 아트팝을 건설하는 와중에도 멜로디라는 대중음악의 본질적 요소를 놓지 않고 대중과 소통했다.
음원으로만 수없이 음악적 번뜩임을 예찬했던 천재 음악가를 비교적 용이하게 “영접”하게 되어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아직 너무도 정정한 모습에 혹여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풍성한 셋리스트로 콘서트를 한 번 더 보고프다. 그때까지 롱 리브 런그렌(Long Live Rundgren)!!!
p.s. 오늘 아침 영국 전설적인 파워팝 밴드 배드핑거의 조이 몰랜드 별세를 접했다. 배드핑거의 1971년 파워팝 걸작 < Straight Up >의 프로듀서가 바로 토드 룬드그렌. 마찬가지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뉴욕 돌스 프론트퍼슨 출신 펑크 아이콘 데이비도 요한슨이 소속했던 프로토 펑크의 대명사 뉴욕 돌스의 1973년 셀프 타이틀 데뷔작 < New York Dolls >와 미국의 독보적 아트락 밴드 스파크스의 데뷔 앨범 < Sparks >(1972)같은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토드의 손길을 거쳤다. 괜히 영국 음악 전문 매체 NME 선정 최고의 프로듀서 18위에 오른게 아니다. 언젠가 프로듀서의 토드 룬드그렌도 다뤄볼 날이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