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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라폰으로 이룩한 재즈 훵크 월드

로이 에이어스 (1940 -2025)

by 염동교

레코드 숍을 자주 다니다 보면 절로 익숙해지는 아티스트가 몇 있다. ‘Ain’t No Sunshine’ 부른 소울 레전드 빌 위더스와 하드 밥부터 재즈 훵크까지 영역을 넓혔던 트럼페터 도널드 버드, 꿀처럼 달콤하고 끈적거렸던 훵크 집단 오하이오 플레이어스까지. 포스트 밥으로 출발해 재즈 훵크의 권위자로 등극한 비브라포니스트 로이 에이어스도 중고 음반 가게의 주연배우 중 하나다. 비브라폰은 얼핏 학창 시절 실로폰이 떠오르는 악기로, 막대로 두드려서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타악기, 진동으로 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체명악기로 분류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PJUHaZ69igA


물론 그의 영향력은 레코드숍에 그치지 않는다. 존 레넌과 알 파치노와 같은 1940년에 태어난 이 비브라폰 전설이 2025년 향년 84세로 별세했다. 버라이어티와 가디언 등 영미권 유력 언론사들이 장문의 특집글을 게재했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엔 지적인 아프리칸-아메리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가 일제히 추모 포스팅을 올렸다.


라이오넬 햄튼과 개리 버튼, 밀트 잭슨과 바비 허친슨 등 기라성 같은 비브라포니스트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는 로이 에이어스는 특히 재즈-훵크 분야에 족적이 크다. 멈추지 않고 전진하며 진화하기까지 하는 예술가의 표본이기도 했다. 피아니스트 잭 윌슨과의 1960년대 초반 협업작을 비롯해서 로이 에이어스 콰르텟부터 로이 에이어스 유비쿼티로 무수한 수작을 남겼다. 알리 샤히드 무하마드(Ali Shaheed Muhammad)와 펠라 쿠티 같은 아프리카 뮤지션들과의 합작품, 1973년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 <Coffy> 사운드트랙도 경력상 특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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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비트 거장 펠라 쿠티와 협연한 Music Of Many Colours (1980)

에이어스의 재즈-훵크는 1960-70년대 히피 시대 사이키델릭과 또 다른 질감의 환각성을 띠었고 그로 인해 1990년대 애시드 재즈와 네오 소울의 시발점이란 평가도 많다. 공로에 대한 헌사가 아니라 실제로 1990년대 해당 조류와 사운드가 흡사하며 관련 장르의 후배들과 교류했다. < Guru’s Jazzmatazz > 시리즈로 유명한 재즈 랩 대가 구루와 더 루츠 같은 후배 블랙뮤직 아티스트와 협업했으며, 타일러 더 크리에이어터와 카니예 웨스트 같은 21세기 음악가들도 그의 음악을 끊임없이 샘플링했다.


상기한 대로 그의 음반들은 소울-훵크 레코드 컬렉터들에게 필수품과도 같다. 유비쿼티의 1970년대 초중반 작품들의 오리지널 레코드는 상태만 좋다면 10만원을 훌쩍 넘는 고가지만 그렇다고 범접 못 할만한 가격은 아니라 많은 컬렉터에게 군침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유비쿼티 명의의 1972년 작 < He’s Coming >같은 희귀작도 존재하긴 한다. 에이어스의 사망으로 한동안 더욱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 자주 가는 신당동 음반 가게 모자이크에서도 1976년 폴리돌(Polydor)에서 발매한 < Everybody Loves the Sunshine >가 판매 개시하자마자 동났다. 닥터 드레와 메리 제이 블라이즈 등 여러 음악가가 100번 이상 샘플링했다는 ‘Everybody Loves the Sunshine’가 실린 명작이다. 이 음반 말고도 1973년 작 < Red, Blak & Green >과 같은 해에 나온 < Virgo Red >, 1976년도 음반 < Vibrations >을 권한다. 중독적이고 성(性)적이며 환각적인 비브라폰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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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도 계속 공연했던 그인 만큼 갑작스러운 작고가 안타깝다. 일본 재즈 헤비 컬렉터인 지인도 블루노트 도쿄의 공연 포스터 사진을 SNS에 게시하며 로이를 추모했다. 그는 3월 7일 소장 중인 로이 에이어스 레코드를 잔뜩 준비해 부평에 있는 어느 바에서 추모 믹스셋을 꾸렸다. 나도 음반이 충분히 모이면 올해 안으로 음악 친구들에게 에이어스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레이블 설립자이며 무엇보다도 방대한 레코드 컬렉션을 자랑하는 프랑스 출신 디제이 질 피터슨은 “당신이 이룬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당신은 완벽한 공식(Formula)를 창안했습니다, 소울-훵크-코스믹-재즈 마스터여”라며 에이어스를 애도했다. 피터슨이 언급한 공식은 아마도 첨언한 내 가지 스타일을 고루 섞어 건축한 로이 에이어스만의 사운드스케이프가 아닐까 싶다. 비브라폰으로 재즈-훵크 세계의 꼭대기에 오른 사내 로이 에이어스를 그가 남겨놓은 무수한 레코드로 회고해본다.

KakaoTalk_20250310_002736526.jpg Daddy Bug & Friends (1976)


Daddy Bug & Friends 에서 한 트랙
상기한 펠라 쿠티와의 Music of Many Colours 에서 한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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